남인수(南仁樹) 1집/L.K.L 레코오드사(LKL-103)
한 두 세대 이전 분들이 즐겨 들으셨을 가수 남인수(1918~1962)의 1집 음반이다.
오래전 돌아가신 이모부께서 들으셨던 음반으로 발행연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각 곡들의 발표연대를 미루어 짐작컨대 49년에서 50년 즈음이 아닌가 싶다.
이 음반에 실린 곡들이 모두 의미가 있겠지만 그 중 '낙화유수(落花流水)'가 유명하다 한다.
사진 맨아래에 인터넷에서 참고자료 하나를 옮겨본다.
그 자료에 의하면 이 음반은 남인수 음반 30여종 중 모창이 없는 오리지날(!) 6가지 중 하나이다.
뒷면. 수록곡과 가사가 적혀 있다.
낙화유수/落花流水(1942), 남아일생/男兒一生(1943), 포구의 인사/浦口의 人事(1941), 남매/男妹(1942)
인생선/人生線(1942), 울어라 쌍고동(1940), 달도 하나 해도 하나(1947), 고향산천/故鄕山川(1949)
A면. 가운데가 갈라진 것 같이 보이지만 마치 고려청자의 표면처럼 실제 만져보면 갈라지지 않았다.
B면.
10인치 LP. 이 음반을 보면 이모부 생각이 난다.^^*
--<참고자료>------------------------------------------------------------------------------
출처: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08075
요절한 천재가수를 향한 '짝퉁의 순정' |
세월따라 노래따라 유령처럼 떠도는 '남인수 모창 음반' |
이야기를 풀어 가기 위해 우선 지난 20세기 말로 돌아가 보자. 한 세기를 정리한다는 명분으로 갖가지 '10대 OO' 선정이 봇물처럼 쏟아지던 1999년 12월, 한국 대중음악사를 빛낸 명반 10장이 선정되었다는 기사가 어떤 일간지에 등장했다. 통상 그런 기사에는 도대체 누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지에 대한 시비가 으레 따라붙기 마련이지만, 일단 복잡한 논의는 접어두고 보자.
'가요사 10대 명반'에 짝퉁 음반이?
당시 10대 명반으로 뽑힌 음반 목록의 첫머리를 장식한 것은 <남인수 히트곡집>이었다. 선정 이유를 보면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애수의 소야곡> <가거라 삼팔선> <무너진 사랑탑> 등으로 30~50년대를 풍미했던 가요계 최초의 슈퍼스타 남인수의 베스트 앨범.그의 노래 <꼬집힌 풋사랑>을 듣고 어느 기생이 자살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사랑받았다.'
죽은 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요황제'라 불리며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남인수(1918-1962)의 위상을 생각해 보면, 그의 이름이 거론된 것은 별반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남인수 히트곡집>이라는 음반에는 아무래도 찜찜한 구석이 있다. 아무리 줄잡아도 70종이 넘는 남인수 관련 LP음반 가운데 <남인수 걸작집> <남인수 애창곡집> <남인수 특선집>까지는 있어도,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인수 히트곡집>은 도통 보이지 않는다.
10대 명반을 선정한 이들은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음반을 두고 말을 한 것일까. 표현이 좀 애매한 감은 있지만, 어쩌면 선정 이유에 등장하는 <애수의 소야곡> 등 네 곡이 함께 수록된 음반을 두고 <남인수 히트곡집>이라 불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런 음반이 과연 있기는 한 것일까.
▲ <남인수 골든 힛트앨범> | |
ⓒ 이준희 |
예전에도 몇 번 언론에서 다루어진 적이 있는 '짝퉁 남인수' 문제는, 이른바 대중음악 평론가라는 나름의 전문가조차도 그 허실을 제대로 짚어 내기가 이렇게 어렵다. 그렇게 어려웠기에 <남인수 히트곡집>이라는 정체불명의 음반이 등장했는지도 모른다.
수록된 열네 곡이 모두 짝퉁, 즉 모창으로 채워져 있는 <남인수 골든 힛트앨범>은 좀 심한 경우에 들지만, 그밖에도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모창이 들어가 있는 남인수 LP음반은 대단히 많다. 남인수 노래만으로 구성된 남인수 독집 음반이 대략 30종 가까이 있는데, 이 가운데 모창이 없는, 진정 명품이라 볼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단 여섯 가지에 불과하다.
▲ 위 왼쪽부터 <남인수 가요 걸작집> <추억의 옛노래 남인수편> <남인수 걸작선 제2집>. 아래 왼쪽부터 <남인수 걸작선 제1집> <남인수 신가요걸작집> <남인수의 불후의 힛트선집> |
모창이 진짜 노래보다 낫다?
▲ <그리운 남인수 애창집> | |
ⓒ 이준희 |
▲ <남인수 걸작집 제3집> | |
ⓒ 이준희 |
남인수가 세상을 떠난 1962년 직후에 나온 이 음반에는 이청봉(이후 남강수로 예명 변경), 남월수, 문정상 등 모창가수가 등장한다. 단 여기서는 모창을 모창이라 밝히고 모창가수의 이름도 그대로 적었으므로, 아직 진정한(?) 짝퉁의 경지에 올랐다고는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미성숙한 단계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1960년대 중반부터 모창을 모창이라 하지 않는 짝퉁의 역사가 이미 펼쳐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청봉, 남월수, 문정상이라는 이름은 은근슬쩍 음반 재킷에서 사라져 버렸고, 그 빈 자리에 세상 떠난 남인수의 이름이 대신 들어앉기 시작했다.
사실 모창가수들이 부른 노래 가운데에는 한다하는 남인수 노래 귀명창들에게도 오랫동안 혼란을 안겨주었을 만큼 출중한 곡도 일부 있다. 특히 <남인수 걸작집 제3집>에 처음 수록되었다가 이후 다른 음반에서는 남인수가 부른 것으로 둔갑했던 이청봉의 <추억의 소야곡>은 몇 해 전 남인수 팬클럽에서도 모창 여부를 놓고 마지막까지 일대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경우이다. 모창으로 완전히 판명된 지금도 오히려 진짜 남인수 노래보다 낫다는 의견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을 정도다.
가수라면 누구나 '자기 노래'에 대한 욕심이 있는 법인데, 모창 가수들은 무슨 까닭으로 자기 이름을 내걸지 않는 짝퉁의 길로 들어선 것일까. 명품을 가장하는 짝퉁의 속성이 대체로 그러하겠지만, 거기에는 명품에 관한 불균형한 수요와 공급의 괴리를 노리는 간단한 경제논리가 도사리고 있다.
공급의 원천인 남인수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 노래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많기만 한 상황, 그것은 음반회사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음반을 찍기만 하면 바로 돈이 될 것이라는 유혹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나마 진짜 남인수 음원을 확보하고 있는 음반회사는 우려먹기라도 가능했지만, 그렇지 않은 음반회사들로서는 짝퉁 제작이 가장 손쉬운 돈벌이일 수밖에 없었다. 모창 음반이 1970년대에 후발 음반회사에서 유독 많이 나온 것은 그러한 사정과 관련이 있다.
이청봉, 즉 남강수씨는 사석에서 '어쨌든 남인수 선생 덕에 오랫동안 가수로서 활동을 해 올 수 있었는데, 모창 논란으로 본의 아니게 선생께 누를 끼치게 되어 죄송한 감이 있다'는 요지로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지만, 앞서 보았듯 모창 음반이 모창 가수 개인에게 책임을 돌릴 문제는 아니다. 그보다는 음반회사의 얄팍한 상술, 나아가 음반산업의 구조적 불합리와 관련이 깊다 할 것이다.
요절 가수 배호도 모창 음반 판쳐
남인수와 함께 모창 음반이 많기로 유명한 배호(1942-1971)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역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1971년에 서른도 안 된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기에, 죽은 배호 이름으로 한몫 잡아 보려는 음반회사들의 치열한 경쟁 속에 숱한 모창 음반들이 만들어졌다. 좀 너그러이 보자면 모창 음반은 요절한 천재가수의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향한 일그러진 '짝퉁의 순정' 같기도 하다.
▲ <추억의 소야곡> SP음반 | |
ⓒ 이준희 |
앞서 짝퉁의 최고봉으로 소개했던 것이 <추억의 소야곡>인데, 남인수의 진짜 <추억의 소야곡>은 SP(유성기)음반으로만 남아 있기에 직접 비교가 좀 어렵다.
대신 남인수가 재녹음으로 남긴 <애수의 소야곡>과 이청봉이 부른 <추억의 소야곡>을 함께 들어 보도록 하자. 명품과 짝퉁의 같고 다름을 당신의 귀는 얼마나 느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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