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시집/第1詩集·누렁이 마음·모아드림, 2007

『누렁이 마음』서평 / 채 은 ‘이 세계의 바깥 풍경들’ 중에서

이원식 시인 2007. 12. 13. 00:11
 

 

                 《불교문예》2007.겨울호

 

 

 

채 은 ‘이 세계의 바깥 풍경들’ 중에서 《불교문예》2007.겨울호



  로드킬(roadkill):이원식의 『누렁이 마음』(모아드림,2007)


  해설(「정형으로 빚어진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서정)에서 유성호가 정확히 언급했듯 이원식 시의 기저에는 불가적 사유가 깊숙이 내재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흔히 접하는 함량미달의 유사 선시의 경우들처럼 불교적 세계관을 그대로 답습한다거나 고스란히 옮겨 적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원식은 이 세계의 도처에 잠재해 있는 폭력과 그 비참함을 발견하고 그 앞에서 어쩔 도리 없는 인간의 비루한 숙명을 군더더기 없이 묘파한다.


      

     부릅뜬

     타이어가

     지르밟고

     있었다


     활짝 편

     모습으로

     짓이겨진

     비둘기


     곱게 편

     하얀 손수건

     한 장인 줄

     알았다


                    -「하얀 고백」전문



  정형시조의 틀을 빌려 자연에 가해지는 인간의 무자비한 폭력을 무심한 듯 그려내고 있는 「하얀 고백」은 이원식의 시적 방법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다. 비록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로드킬만큼 인간이 자연에 자행하는 학살이 또 달리 있겠는가.

  도로는 분명 인간의 편의와 문명의 발전을 위해서는 필수적이지만 그런 만큼 아니 그보다 더 자연 세계의 곳곳을 가르고 쪼개고 찢는다. 먹이를 찾아서든 짝을 찾아서든 새 삶의 터를 찾아서든 동물들은 인간이 자연에 촘촘히 새겨놓은 폭력적인 경계들을 목숨을 걸고 건널 수밖에 없다.

  당장 차를 몰고 어느 도로든 달려보라. 그러면 그곳이 곧 동물들의 시체가 즐비한 카타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도로와 도로 위를 질주하는 차들의 무시무시한 속력에 비한다면 누 떼를 잡아먹기 위해 강물 깊숙이 잠수해 있는 악어는 차라리 경건하기까지 하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 시는 생태시의 한 사례로 읽을 만하다. 아니 그간 발표된 여느 생태시들의 단점들을 이 시는 전혀 지니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값어치가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시적 영역으로 개발된 생태시는 애석하게도 지난 연대의 시들이 그러했듯 지나치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앞세워 대부분 시적 묘미를 얻지 못한 채 묻히곤 했다. 뿐더러 자연에 대한 인간의 반성적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손 하더라도 인간의 시선에 의해 포획된 자연을 그 대상으로 삼거나 인간이 돌아가야 할 귀소 공간으로 자연을 지목 · 재구성함으로써 세속화된 낭만적 풍경으로 자연을 전락시키는 경우가 상당수였다.

  이에 비해 도로 한가운데 “지르밟”혀 “활짝 편/모습으로/짓이겨진/비둘기”를 “곱게 편/하얀 손수건/한 장인 줄” 착각한 자신의 그릇된 시각을 “고백”하는 이원식의 시는 철저하게 자기반성적이라는 점에서 그간 생산된 통상적인 오만한 시각을 교정한다. 또한 「하얀 고백」은 로드킬의 희생양을 비둘기로 설정하고 있는데, 이는 실로 놀라운 상상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비둘기를 속된 상징으로 읽어 버린다면 「하얀 고백」은 어처구니없는 시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땅에 사는 동물들뿐만 아니라 하늘을 나는 새들마저 로드킬 당하는 현실을 그려내는 시라고 본다면 이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이 어디 있겠는가. 이원식의 시어를 그대로 빌려 말하자면 이는 모두 “그느르지 못한 죄”(「분신分身을 위하여」)다. 따라서 얼핏 읽기엔 대책 없는 연민으로 가득한 듯 오해받을 수도 있는 「누렁이 마음」과 같은 시도 그 내력을 알고 보면 인간과 자기 자신에 대한 도저한 반성 속에서 길어올린 명편인 것이다.



     이 생엔 그대에게

     다가설 수 없는가


     떨어지는 꽃잎 하나

     위로할 수 없는데


     어쩌랴!

     두 눈 깊숙이

     제 스스로 눕는 풀들


                    -「누렁이 마음」전문



  정말이지 어쩌겠는가. 보살피고 마음을 다하지 못한 잘못 때문에 “위로”마저 할 수 없는 “그대”에게 말이다. “두 눈 깊숙이/제 스스로 눕는 풀들”을 향한 이원식의 마음은 지금까지 읽은 바에 비추어 볼 때 “파낼수록/아득한”(「돌의 깊이」) 자연의 깊이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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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 은 1973년 출생. 2003년《시작》으로 등단. 시집으로 『멜랑콜리』. 동국대학교 및 광운대학교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