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a/시조자료·시조집

6.포시법(捕詩法)- 정완영

이원식 시인 2007. 11. 4. 23:06
[ 포시법(捕詩法) / 정완영 ]


짐승이나 어별(魚鼈)을 잡는데도 그 포획법이 따로 있다. 가사 호랑이나 곰이나 멧돼지를 잡는데는 이놈이 잘 다니는 길목을 지키고 앉았다가 무심코 어슬렁이며 나타난 놈에게 일발필중(一發必中)의 포화를 쏘아 적중시켜야 된다. 그렇지 않고 섣불리 맞히게 되면 짐승을 잡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람이 해를 입게 된다.

쩡 터질 듯 팽창한
대낮 고비의 정적(靜寂)

읽던 책도 덮고
무거운 눈을 드니

석류꽃 뚝 떨어지며
어데선가 낮닭소리.
-오(午)

이호우 선생의 작품이다. "석류꽃 뚝 떨어지며 어데선가 낮닭소리" 이 종장이야말로 일발필중으로 적중한 종장이다. 이 시에는 이 종장말고는 다시 다른 말이 있을 수가 없다. 종장뿐 아니라 시제 자체도 <오(午)>라는 단자를 놓아 이미 적중하고 있다. 단발로 큰 짐승(詩材)을 쓰러뜨린 통렬감이 뒤따르는 작품이다. 포수로 친다면 과연 명포수의 솜씨이다.
바늘못 하나로 나비나 잠자리의 등을 찔러 꼼짝없이 표본실의 함 속에 꽂아 놓듯이, 시인에겐 은바늘(的中語) 한 개만 가지고도 숨통을 찔러 지구의 자전까지를 멎게 하는 재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종장에는 주마축지(走馬蹴地), 달리는 말이 뒷굽으로 땅을 차듯 하는 경개(景槪)도 있는 것이다.

궂은 일들은 다 물알로 흘러지이다
강가에서 빌어본 사람이면 이 좋은 봄날
휘드린 수양버들을 그냥 보아 버릴까.

아직도 손끝에는 때가 남아 부끄러운
봄날이 아픈, 내 마음 복판을 뻗어
떨리는 가장가지를 볕살 속에 내 놓아.

이길 수가 없다 이길 수가 없다
오로지 졸음에는 이길 수가 없다
종일을 수양이 뇌어 강은 좋이 빛나네.
-수양 散調

고려청자·이조백자만 국보가 아니라, 이런 시품이야말로 국보급이다. 박재삼 시인은 총포로 사나운 짐승을 잡는 포수가 아니라 여울목에 그물이나 통살을 쳐 놓고 제발로 걸어 들어오는(?) 고기를 건져올리는 어부 같은 시인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두어야할 일은 그물이나 통살을 아무 물에나 친다고 고기가 들어와 주는 것이 아니다. 물고기의 통로를 알아서 그물이나 통살을 쳐야 고기가 걸려드는 것이다. 이 시인은 물고기가 흐르는 목, 다시 말해서 인정의 흐름, 천지의 기미(幾微), 무엇 그런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차리는, 말하자면 모든 사물과 통화를 가장 잘하는 달인(達人)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별로 힘을 안들이고도(?) 고기를 잘 잡아내는 달통한 어부라고나 할까. 그러기에 그의 시에는 억지를 부린 흔적이라고는 없다. 자수를 맞추기 위해서 고심한 흔적이 눈곱만큼도 없을뿐 아니라, 오히려 그의 가락(내재율)에 자주가 절로 따라온다.

그대 그리움이
고요히 젖는 이 밤

한결 외로움도
보배양 오붓하고

실실이 푸는 그 사연
장지 밖에 듣는다.
-비

이영도 선생의 살뜰한 작품이다. 그리운 사람을 못내 그리워하는 곡진한 심정이 잘 담겨져 있다 언단의장(言短意長), 이 짧디짧은 단수 하나로 하여 우리들은 몸도 마음도 온통 촉촉하게 젖어드는 것이다. 무엇인가 간곡히 타이르는 듯한 이 정의(情誼)로운 저음은, 마치 봄날 어린 소녀가 신발을 벗어들고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며 뒤쫓아가 나비 날개를 잡아내듯 하는 포시법(捕詩法)을 쓰고 있다 묘품(妙品)이다. 심안(心眼)을 열고 입실하여 보라. 천지간에 시는 얼마든지 편재해 있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