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시집/第4詩集·비둘기 모네·황금알, 2013

■시조시학에 실린 이원식 시집『비둘기 모네』서평

이원식 시인 2013. 12. 10. 00:01

 

■이원식 시집『비둘기 모네』서평/ 《시조시학》2013. 겨울호(pp.214-217)

 

 

 

 

                               존재론적인 고독과 상처를 끌어안는 정형시학

 

                                                                                                                               박성민(시인)

   

선적, 불교적 사유로 빚은 단수의 미학적 정수

-이원식 시집 비둘기 모네

 

 

2004불교문예에 시, 2005월간문학에 시조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한 이원식 시인은 단수의 미학적 정수를 선명하게 보여주면서, 불교적 세계에 대한 인식과 함께 생의 이면에 대한 통찰을 통해 생명을 지닌 존재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시인이다. 그동안 누렁이 마음, 리트머스 고양이, 친절한 피카소3권의 시집을 상재했던 시인은 정형시에서도 단시조만을 고집하면서 단시조의 기조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이번 시집, 비둘기 모네는 건널목을 오가다가 한 쪽 발을 잃은 도심의 비둘기를 통해서 잘린 발 절뚝이면서도 살아가야 하는 서민들의 아픈 현실을 모네의 화법으로 승화하고 있다. 그의 시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자.

 

 

 

초침(秒針)이 멈추었다

정적(靜寂)

오지 않았다

 

낡은 욕조바닥으로

또옥 또옥

물방울소리

 

올 깊은 금선(琴線)이었다

 

아주 맑은

경전(經典)이었다

 

 

                                                                                                                                                  - 낮은 음자리전문

 

 

아마도 정적이 깃든 한밤중이었을 것이다. 시인은 낡은 욕조 바닥으로/ 또옥 또옥떨어지는 물방울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시계의 초침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지다가 멈춘다. 하지만 시인의 귀에는 역설적으로 정적(靜寂)/ 오지 않았다화살이 활시위를 떠난 후에도 부르르 떨 듯이, 새가 날아간 후에도 나뭇가지가 부르르 떨 듯이 시인의 마음속에는 계속 시계의 초침과 같은 물방울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것이다. 제논의 역설, ‘날아가는 화살은 사실 정지해 있다를 뒤집으면 정지한 화살은 사실 날아가고 있다가 될 것이다. 멈춘 물방울 소리는 시인의 마음에 계속 물방울 소리를 내며 낮게 떨어진다. 들려오지 않는 소리를 듣는 귀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귀와 같다고 볼 때, 이는 염화미소(拈華微笑)와 같은 불교적, 선적 사유다. 미묘법문(微妙法文)은 말이나 글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번개가 치면서 온 세상이 한 순간 환해지듯이, 카메라 플래시가 찰칵 한 순간 찍힘으로써 모든 것을 담듯이 깨달음은 이미 멈춰버린 물방울 소리에도 담겨져 있다. 이렇게 낮은 곳에서 들려오는 삶의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원식 시인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가는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도 시를 발굴해내는 소중한 능력을 지녔다. 그의 예리한 눈매에 초착되는 시어들은, 작은 물방울소리도 올 깊은 금선(琴線)”이 되고 아주 맑은 경전(經典)”이 되는 것이다. 마치 목마른 밤에 일어나서 한 사발의 찬물을 들이킨 것처럼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작품이다.

 

 

 

오늘도 참 많이 울었다

 

풀에게

미안하다

 

이 계절

다 가기 전에

벗어둘

내 그림자

 

한 모금 이슬이 차다

 

문득 씹히는

내생(來生)의 별

 

 

                                                                                                                                                        - 귀뚤귀뚤전문

 

 

선적, 불교적 사유를 함축하는 단수의 미학이 돋보인다. 이 시에서 이원식 시인은 소소한 자연물에 대한 미안함과 생을 다 비우는 법에 대한 성찰의 과정을 보여준다. “오늘도 참 많이 울었다는 표현 속에는 울음의 지속성이 내포되어 있어, 짧은 시행 안에 참으로 오랜 시간이 함축되어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 오랜 울음 속에서 화자는 이 계절 가기 전에 자신의 그림자를 벗어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계절은 화자가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며, 현생이며, 현재의 자신을 벗어두고 또 다른 나와의 만남을 예비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화자가 머금은 한 모금 이슬속에서 문득 내생(來生)의 별이 씹힌다. 우리의 현생은 하늘에 뜬 별처럼 잠시 머물러 있는 존재다. 이제는 귀뚜라미도 떠나야 할 늦가을, 그동안 밟고 다녔을 풀에게 미안함을 고백하는 순간, 자신의 그림자가 욕망의 허울뿐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 시는 마음을 비워야 할 때를 비로소 아는 것, 물질이나 감정에 사로잡힌 생각들을 비우는 것이야말로 존재의 내부를 채우는 일임을 독자에게 일깨워준다. 장자는 마음을 닦는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귀뚜라미가 우는 가을은 나무들과 그 꽃과 잎들을 떨구며 나목(裸木)의 상태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이러한 가을에 화자는 무성한 잎과 꽃처럼 욕망으로 가득 찼던 자신을 들여다보며 이 계절/ 다 가기 전에/ 벗어둘/ 내 그림자를 인식하는 것이다. 자아성찰의 과정을 단수로 압축한 시다.

 

 

 

노옥(老屋)을 벗으려는가

돌아보는 길고양이

 

이승에 남긴 상처

수월관음(水月觀音)의 꽃그림자

 

불현듯 마주친 두 눈

 

당신은

누구십니까

 

 

                                                                                                                                              - 하면목(何面目)전문

 

 

하면목(何面目)’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볼 낯이 없다.’는 말이 된다. 이 작품 속에서 화자가 마주친 대상은 길고양이다. “노옥(老屋)을 벗으려는가/ 돌아보는 길고양이라든가 이승에 남긴 상처란 표현으로 추측하건데, 죽음을 앞둔 길고양이일 것이다. 이렇게 봤을 때 노옥(老屋)’은 바로 고양이에겐 지은 지 오래 되어 낡고 허름한 집 같은 육신이다. 털이 거의 빠지고 눈에는 눈곱이 끼어 있으며 이빨과 발톱마저 무뎌진 늙은 길고양이는 이제 이승에서 싸돌아다녔던 길들을 바라보며 점점 무겁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육체의 짐을 벗으려 한다. 죽음을 앞둔 고양이가 화자의 두 눈과 불현 듯 마주친 순간이 바로 작품 속의 시간이다. ‘수월관음(水月觀音)’33관음 중의 하나로 그의 현시도(顯示圖)는 수면에 비친 달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수면이 고요하고 청정하여 달이 비춰지는, 마치 월인천강(月印千江)과 같은 상태로 수면에 비친 달인데, 이는 수면이 바람에 의해 일그러지는 모습이 변해버리는 일시적 존재이기도 하다. 이 작품 속에서의 길고양이나, 언젠가 자연에 순응해야 할 유한한 존재인 화자나 모두 수면에 비친 달과 같이 덧없는 존재일 것이다.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표현은 몸의 허울을 벗고 이승을 떠나려는 길고양이의 본질적 실체를 묻는 말이며 이는 또 길고양이가 화자 자신에게 누구인지를 묻는 화두이기도 하다.

난분분 흰 꽃잎을/ 제 몸 가득 뿌려두고// 일주문(一柱門) 밖 긴긴 손짓/ 비둘기의 영혼들// 엄동(嚴冬) / 간곡한 진혼(鎭魂)// 백아절현(伯牙絶絃)/ 찹쌀 떠-!(언제나 동행(同行)에서처럼 엄동설한에 간곡하게 외쳐대는 찹쌀떡 장수의 목소리를 애잔한 해학으로 그려내거나, ”바람만이 꽃나무를 흔드는 것이 아니다“(비둘기가 잠든 밤-K를 생각하며)에서처럼 진솔한 고백의 목소리도 그의 시를 빛나게 하는 개성적 덕목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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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2011~201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시집 쌍봉낙타의 꿈. 2013년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수상.

 

 

 

                                                    《시조시학》2013.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