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 나는 제일 슬픈 구절을 쓸 수 있다/ 나한테 이젠 그녀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를 잃어 버렸다는 느낌에 잠겨’(파블로 네루다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에서).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지만, 모두가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시인에게 사랑이란 마르지 않는 상상력의 샘이다. 첫 만남의 황홀, 욕망과 질투, 그리움과 후회 등 사랑의 감정에 따라 연인은 시인을 낙원으로 인도하는 여신이 되거나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악녀가 되기도 한다. 네루다의 말처럼 시인은 연인을 잃어버린 순간 제일 슬픈 시를 쓸 수 있다.
<사랑은 시가 되었다>는 고은 김지하 정호승 안도현 등 153명의 시인들이 쓴 사랑의 시를 모은 책이다. 우리 시대 시인들의 연시 앤솔로지라 할 만하다. ‘그리움이, 사랑이 찬란하다면/ 나는 지금 그 빛나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김용택 ‘약이 없는 병’), ‘절정에 이르렀던 날의 추억이/ 너를 더 아프게 하리라 칸나꽃밭’(도종환 ‘칸나꽃밭’),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안도현 ‘강’).
젊은 시인들의 사랑노래도 이어진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리움의 내력을// 눈을 감으면/ 나는 가을이다/ 낡은 영혼이 갈아입은 옷은/ 온통 젖어있고/ 숨쉴 때마다/ 나는/ 흐린 가을 하늘이다’(곽효환 ‘그리움의 내력-벽화 속 고양이3’). ‘가장 높은 곳에 보푸라기 깃을 단다/오직 사랑은/내 몸을 비워 그대에게 날아가는 일/외로운 정수리에 날개를 단다’(신용목 ‘민들레’).
‘편견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는 제목 아래에는 주로 1990년대 이후 등단한 시인들의 새로운 감각과 형식의 시들을 담았다. 운명적인 첫 만남의 감동을 그린 ‘주석없이’(유홍준), 숲을 거니는 연인들의 사랑의 충만함을 정갈한 이미지로 환기시키는 ‘가을 수목원’(김완하), 죽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의 삶을 모래시계에 비긴 ‘지순’(강신애) 등이 눈길을 끈다. 섬뜩한 이미지로 실연의 아픔을 형상화한 ‘장미의 요일’(조인호) 등에서 신세대적 감수성이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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