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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오늘의 시' 좋은 시 79편·시집 29권 뽑아(조선일보 2004.3.14일자)

이원식 시인 2007. 11. 5. 00:29
'2004 오늘의 시' 좋은 시 79편·시집 29권 뽑아
창비출판사·'현대시학' 으뜸

[조선일보 김광일 기자] 작년 한해 한국의 좋은 시 발표는 계간 창비와 월간 현대시학이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도서출판 작가(대표 손정순)는 지난주 ‘2004 오늘의 시’라는 책을 내고 ‘좋은 시’ 79편(시조 8편 포함), ‘좋은 시집’ 21권을 선정, 발표했다. 모두 130여명의 시인·평론가들에게 물은 결과 작년에 발표된 작품 가운데 추천을 받은 ‘좋은 시집’은 232권, ‘좋은 시’는 502편이 추려졌고, 그중 득표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한 것이다.

‘추천된 좋은 시집’들을 출판사별로 분류하면 창비(72권), 문학과지성사(29권), 천년의시작(22권), 문학동네(13권), 책만드는집(12권), 고요아침(11권) 세계사(11권), 열림원(9권), 솔(8권), 모아드림(7권) 등의 순서를 보였다. 또 ‘추천된 좋은 시’를 발표한 문예지는 현대시학(57편), 현대시(34편), 문학사상(32편), 현대문학(26편), 시작(詩作)(25편), 창작과비평(22편), 열린시학(20편), 작가세계(19편), 시와사람(19편), 애지(17편) 순이었다.

이 중 내일모레면 시선(詩選) 시리즈 300권째를 내다보고 있는 창비와 문학과지성사(문지) 양대 문예출판사 가운데 ‘작품을 고르는 안목’에서 창비의 순위가 두드러졌다는 점이 눈길을 모은다. 창비는 ‘좋은 시집’을 펴낸 출판사 순위에서 1위, 그리고 좋은 시를 발표한 지면에서 6위를 차지했다. 반면 문지는 출판사 순위에서 창비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권 수로 2위를 했고, 지면으로서 순위는 11위에 머물렀다.

물론 이러한 순서가 ‘상당하고도 객관적인’ 근거를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첫째 각 출판사가 작년 한 해 발간한 시집이 모두 몇 권이며, 그중 추천된 시집이 몇 권인지를 상대적으로 밝히는 자료가 없다. 또 발표 지면으로서 문예지는 매달 내는 월간지와 석 달에 한 번 내는 계간지가 시(詩)에 할애하는 지면이 차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 세밀하게 고려되지 못했다. 또 ‘좋은 시와 시집’을 추천한 추천위원의 선발 과정, 그들의 개인적 취향 문제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번에 창비가 문지보다 앞선 이유는 “머리보다 가슴이 뜨거운 시를, 가슴보다 손발이 부지런한 시를 좋은 시로 삼았다”고 밝힌 작가 기획위윈회(문혜원 맹문재 유성호)의 ‘펴내면서’라는 글을 엿볼 수밖에 없다.

시는 본질적으로 서열화에 저항한다. 아니 저항해야 한다. 그러나 시의 정신을 흠모한다는 문학 저널리즘(문학 출판을 포함하여)은 시의 서열화를 기회로 삼아야 하는 아이러니를 감수한다. 도서출판 작가의 기획위원회측은 “어디까지나 주체적이지 않고 추수적인 행동에 불과한 로또와 같은 사회의 흐름에 조금이라도 맞서보려고” 이 책을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시를 사랑하는’ 방안을 늘 연구하고 있는 문학 출판인들은 시의 서열화에 저항하면서 동시에 시에 대한 ‘빗나간 상업화’나 무관심에도 저항하지 않을 수 없어 앙케트 조사에 기댔고, 그에 따라 ‘좋은 시’와 그렇지 못한 시를 가렸다는 것이다. 다만 ‘올해의 좋은시’, ‘오늘의 좋은 시’ ‘○○○가 사랑한 시’ 같은 유명 문인들의 시선(詩選) 해설집 발간이 과도한 유행으로 번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있다.

이번에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시집은 ‘은빛 호각’(이시영·창비·20회 추천), ‘아, 입이 없는 것들’(이성복·문학과지성사·15회〃), ‘호랑이 발자국’(손택수·창비·14회〃), ‘도화 아래 잠들다’(김선우·창비·10회〃), ‘아무 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최승호·열림원·7회〃), ‘옛 애인의 집’(이원규·솔·7회〃) 순이었다. 또 ‘좋은 시, 좋은 시인’으로 추천된 순위는 ‘맨발’(문태준) ‘아내의 맨발’(송수권) ‘장농의 말’(이달균) 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