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비애를 감싸고 있는 심미적 감각
-이은채론
유성호(문학평론가 · 한국교원대 교수)
1.
이은채 시인은 1997년에 ꡔ心象ꡕ으로 등단하여 2004년에 첫 시집 ꡔ봄은 소주를 마신다ꡕ(시와시학사)를 상재한 바 있다. 등단 후 10년 동안 그녀는 이처럼 시집 한 권만 상재한 채, 비교적 조용히 문단의 외곽에서 자신만의 언어적 성채를 쌓아올렸다. 그녀의 첫 시집은 “언어의 감각적 표현의 돋보임”(이수익)이라든가 “유연하고 감각적인 언어”(이혜원)의 세계로 평가받은 바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그녀의 시세계가 활달하고 다양한 ‘감각’을 통해 구성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작년에 ꡔ애지ꡕ에 연재했던 20편의 작품들 역시 빼어난 언어적 ‘감각’을 통해 형상화된 세계를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원래 서정시는 인간 존재 혹은 의식을 파악하는 것이 이성적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 현존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양식이다. 그 점에서 이은채가 견지하고 있는 감각적 언어들은, 서정시가 끊임없이 우리의 현재적 감각과 인식을 탈환하는 시간 예술임을 확인해주는 첨예한 물증이 된다. 하여 이 글은 이은채의 이 같은 언어 미학을 잘 보여주는 근작(近作)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그의 언어 감각과 시적 파동을 점검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2.
이은채의 언어 미학 가운데 가장 주목받아 마땅한 권역은, 아무래도 그녀가 가장 적공(積功)을 들이고 있는 언어의 활달한 ‘감각’에 있을 것이다. 그녀는 최근 우리 시단의 주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는 담론적 실재들과 무관한 자리에 자신의 언어를 풀어놓는다. 말하자면 그녀의 시는 ‘생태시’나 ‘여성시’, ‘해체시’ 같은 담론적 명명을 허락하지 않는 독자적 개별성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이은채 시편을 읽는 일은, 그녀의 시가 어떤 담론에 귀속되는가를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한 편 한 편 낱낱의 완결성을 경험하면서 그 안에 밀도 있게 담겨 있는 언어적 긴장을 음미하는 일이 된다. 먼저 제4회 애지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다음 시편을 읽어보자.
거실에 홀로 앉아 차를 달인다
미수를 넘긴 백통 나비장에 기대어 그만 까무룩 잠이 든 사이
잠결에 양 어깻죽지가 순간 스을쩍 들리는 듯
겨드랑이 비밀스런 숲에서 일어나는 무슨 물결소리 찻물 따르는 소리
그러다가 귓속말처럼 잎 틔우는 소리
이윽고 그 잎새 화알짝 펼쳐지며 몸이 송두리째 붕 뜨는 찰라 어디선가 고양이 한 마리 쏜살같이 튀어나와 내 손을 덥석 베어 무는데
나빌레라!
― 「나빌레라」 전문
이 시편은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언어로 한국어의 새로운 진경을 선보이고 있는”(「심사평」) 작품으로 적극 평가된 바 있다. 시편의 제목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조지훈 시편 「僧舞」에서 차용한 것이다.
화자가 거실에서 조용히 차를 달이는 시간을 배경으로 한 이 시편 안에는 세 마리의 ‘나비’가 들어 있다. “미수를 넘긴 백통 나비장”의 나비, 시인이 거실에서 홀로 차를 끓이다가 잠이 들어 잠결에 되어버린 나비, 그 우화등선(羽化登仙)의 상상적 순간에 쏜살같이 튀어나와 시인의 손을 베어무는 고양이 나비가 그것들이다. 이 세 마리의 ‘나비’는 잠과 현실을 오가면서 동체(同體)를 형성하고 있다.
원래 ‘나비장’은 앞바탕과 경첩에 나비 장식을 한 데서 생긴 명칭이다. 거기 장식된 ‘나비’는 아마 시인이 기대 잠든 곳일 것이다. 그때 시인은 “잠결에 양 어깻죽지가 순간 스을쩍 들리는 듯”한 감각 그리고 “겨드랑이 비밀스런 숲에서 일어나는 무슨 물결소리 찻물 따르는 소리/그러다가 귓속말처럼 잎 틔우는 소리”를 경험한다. 이러한 촉각과 청각에 호소하는 감각적 묘사는, 조용하지만 역동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화자의 미세한 변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이때 잠결에 나비가 된다는 상상에 장자(莊子)의 고사(故事) 「호접몽(胡蝶夢)」이 개입한다.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어 즐겁게 날아다녔는데 그때 자신이 자신인지를 잊어버렸다. 그러다 꿈에서 깨었는데, 깨어 있는 존재는 나비가 아니고 자신이 아니던가. 그래서 장자는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정말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내가 된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여기서 장자는 꿈과 현실의 경계, 삶과 죽음의 구별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바로 이 고사를 개입시켜 자신이 꿈결에 된 ‘나비’가 현실 속에서 차를 끓이는 ‘나’임을 환기한다. 그때 들려오는 물결소리, 차 따르는 소리, 잎 틔우는 소리는 이러한 역동적 변신(變身)의 모티프를 완성하는 감각적 실재들이다. 이러한 감각의 향연은 그의 다른 시편에서 “꽃물 흥건히 내게로 번져 근질거리는 거 발바닥부터 뜨겁게 달아오르는 거”(「꽃술」)라든가 “애인의 목덜미에서 겨드랑이에서 사타구니에서 물씬물씬 번져 오르던 봄내”(「지하철 4호선 평촌역 광장」) 혹은 “양 어깻죽지 사이 우묵한 틈새에 들어 시퍼렇게 박히는”(「痰」) 같은 표현에서 다양한 육체를 얻고 있다.
그 비상(飛翔)의 순간에 고양이 한 마리가 쏜살같이 튀어나와 손을 덥석 베어무는 풍경은,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을 환유한다. 이때 “나빌레라!”라는 감동의 언어가 튀어나오는데, 이는 ‘나비로구나!’와 ‘나비였구나!’라는 어의(語義)를 포괄하면서, 꿈에서의 활력과 현실에서의 비애를 동시에 증언하고 있다. 이때 우리는 그녀의 상상력이 결코 가볍지 않은 데다, 그 안에 감각의 깊이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삶과 죽음 혹은 현실과 꿈을 가로지르는 그녀의 감각은, 다른 시편들에서도 그러한 심미적 차원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방사선과 탈의실 구석에 잠시나마 누군가의 체온을 실었던 가운들이 허물처럼 수북이 쌓여 있다
외투를 벗어 걸다말고
블라우스 두 번째와 세 번째 단추 사이에 슬며시 손을 밀어넣는다
다가와 고요히 안기는 젖무덤
한때 터질 듯 팽팽하게 끓어오르던 시절이 있었겠다
앞자락에 매달려 흔들리는 무슨 열매 같기도 열매 이름 같기도 한 단추들
차례로 눌러 연다
덜컹이는 가슴 애써 싸안고 온 브래지어를 고탄력 팬티스타킹을 가까스로 달래어 벗긴다
서늘한, 여기 어디 무른 틈새에 우물같이 깊은 죄를 묻었던가
뒤늦게 사진에 미쳐버린 K는
모처럼 흑백사진 몇 컷 제대로 찍어두는 거야, 알았지?
병원 입구에 날 내려주며 볼우물에 윙크까지 해댔다
나 맨몸에 갓 세탁된 익명의 허물을 걸쳐 입고 묵묵히 사진 찍으러 간다 그 죄 낱낱이 고하러 간다
마주보고 고하고 돌아서서 고하고 누워 고하고 엎드려 고하고 좌로 구르다 우로 구르다 거꾸로 매달려 찰칵, 찰칵, 찰칵……
누군가의 허물에 내 허물 덤으로 부려놓고 내처 도망쳐오는
나는 자꾸 더듬거리며 블라우스 두 번째와 세 번째 단추 사이에 손을 밀어넣는다
주홍빛 슬픈, 불혹의 네 번째 단추가 고갤 숙인 채
더욱 붉게 뜨겁게 매달리고 있다
― 「주홍단추」 전문
시인은 병원 방사선과에서 촬영을 하는 장면을 시적 상황으로 설정하고 있다. 거기서 그녀는 “탈의실 구석에 잠시나마 누군가의 체온을 실었던 가운들”을 본다. 그 체온들은 허물처럼 쌓여 있는 가운들에 실려 그녀에게 전해져온다. 블라우스 단추들 사이로 슬며시 만져지는 자신의 가슴, 한때는 “터질 듯 팽팽하게 끓어오르던 시절”을 가졌던 그 가슴이 이제는 죄를 지은 듯 고개를 숙이고 촬영을 하러 들어간다. 그래서 그녀는 앞자락에 매달려 흔들리는 단추들을 열고 속옷을 하나하나 벗고는 “서늘한, 여기 어디 무른 틈새에 우물같이 깊은 죄를 묻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맨몸에다가 그 익명의 허물들을 걸쳐 입고서는 “묵묵히 사진 찍으러” 가는 것이다. 그것을 시인은 “죄 낱낱이 고하러 간다”고 표현한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사진 촬영을 하고 도망쳐오듯 병원을 빠져나온 그녀는, “자꾸 더듬거리며 블라우스 두 번째와 세 번째 단추 사이”를 만지게 된다. 거기 “주홍빛 슬픈, 불혹의 네 번째 단추”가 만져진다. 그 단추는 고개를 떨군 채 불혹의 붉은 빛으로 더욱 뜨겁게 매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시편에서도 시인은 삶과 죽음 사이에 걸쳐 있는 ‘주홍단추’를 형상화함으로써 현실과 꿈을 가로질렀던 앞의 시편과 이 시편을 마주보게 하고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지극한 연민과 죄의식이 빚어낸 아름다운 이 시편은, 마치 호손(N. Hawthorne)의 ꡔ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ꡕ를 연상케 하는데, 그 작품 안에 펼쳐진 여주인공의 희생과 참회로 죄를 씻어내는 과정과 시인의 자기 고백 과정이 매우 흡사한 까닭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죄의 고백과 치유 과정이 ‘주홍단추’라는 상징에 녹아 있는 것이다.
3.
이렇듯 이은채 시학의 근본 바탕은, 말의 심미적 감각과, 꿈과 현실을 역동적으로 넘나드는 상상력의 활력에 있다. 물론 그 활력에는 꿈 같은 ‘비애’가 섞여들고 있고, 그 ‘비애’는 다시 선명하고도 다양한 미적 감각을 낳는다. 이러한 연쇄 과정이 그녀 시를 따듯한 비애와 심미적 감각으로 결속하게끔 하는 원동력인 것이다. 이 같은 그녀 시법(詩法)은 구체적인 ‘소리’나 ‘풍경’에 매혹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청각이나 시각에 호소하는 감각적 경험을 치르게끔 한다.
죽은 소의 울음소릴 듣는다
벌거벗은 나무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수액
나무냄새 가죽냄새 한데 엉겨 신음하는 공방에서 늙은 갖바치가 육 척 장신의 나무여자를 안는다
질긴 천민의 거죽, 들썩이며 섧게 섧게 끌어안는다
입덧하듯 울렁거리는 울림통
딴엔 저 귀명창의 북이 되고 싶었다 소리소문 없이 잘생긴 소리 한 놈 배고 싶었다
북메우기 전수자 윤덕진 옹이 사라졌다,
살아나는 이 필생의 북소리
― 「북」 전문
그녀는 ‘북’이라는 소재를 통해 자신의 미적 감각을 선보인다. 다른 시편 「퉁소」에서도 거리에서 퉁소를 부는 남자를 통해 “절절이 꺾이는 농음과 청음”을 듣고 있던 그녀는, 이 시편에서도 ‘북’의 물질성을 열망하고 재현한다. ‘북’에서 “죽은 소의 울음소리”를 듣고 “벌거벗은 나무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수액”이 “나무냄새 가죽냄새”와 한데 엉겨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녀는 공방에서 늙은 갖바치가 ‘나무여자’를 안는 장면을 상상한다. 가죽신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던 갖바치는, “질긴 천민의 거죽, 들썩이며 섧게 섧게 끌어안는다”. 그때 “입덧하듯 울렁거리는 울림통”인 ‘북’은 그녀가 가졌던 “딴엔 저 귀명창의 북이 되고 싶었다”는 소망 혹은 “소리소문 없이 잘생긴 소리 한 놈 배고 싶었다”는 소망을 서서히 환기한다. 이러한 소망은 “죽통 마디마디 뜨겁게 훑고 지나가는/퉁소, 저 남자를 불고 싶다”(「퉁소」)던 열망의 연장선에서 울리는 소리와도 같은데, 그 후 그녀는 “북메우기 전수자 윤덕진 옹”의 죽음을 상기해낸다. 여기 언급되고 있는 송산(松山) 윤덕진 선생은 저명한 북메우기 전수자로서, 전국 유명 사찰의 북은 물론 청와대 앞의 문민고도 만든 거장(巨匠)이다. 그동안 전통 북 제작과 계승을 위해 노력하다가 2002년 타계한 분이다. 그분이 사라지고 나서 “살아나는 이 필생의 북소리”를 듣고 있는 그녀는, 이처럼 시간의 분절을 뛰어넘어 ‘감각’을 소통시키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북’에서 여러 소리를 듣고, 사람이 사라지고 난 후의 북소리를 듣는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감각의 쇄신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밤 깊은 액자 속으로 몰아치기 시작했어
거칠게 훑어내리는 농묵
일필의 산 능선이 놀라 흠칫, 흠칫, 물러앉고 돌연 캄캄해졌어
그때, 어둠의 살을 화악 찢으며 누가 젖어 불쑥 걸어나왔을까
검은 안료를 쏟아 반죽해놓은 듯한 풍경을 또 한차례 주욱 죽 문지르고 가는 속속들이 뭉개며 뻐근하게 파고드는 근성
폭우, 남자였을 것이다 액자 속, 오래 전에
― 「一筆」 전문
이 시편에서는 시각에 바탕을 둔 역동적인 감각이 휘몰아치고 있다. 가령 농묵(濃墨)이 거칠게 훑어내려 액자 속으로 몰아치는 역동성이 산 능선을 놀라게 하고 세상을 갑자기 캄캄하게 한다. 그 순간 화자는 “어둠의 살”을 찢으며 누가 젖어 불쑥 걸어나오는 환각을 느끼게 되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폭우”였다. “검은 안료를 쏟아 반죽해놓은 듯한 풍경을 또 한차례 주욱 죽 문지르고 가는 속속들이 뭉개며 뻐근하게 파고드는 근성”의 남자가 또 그 주인공이다. 이처럼 아주 오래 전 “액자 속”에 있었던 일필(一筆)의 흔적을 환기하고 재현하는 시인은, “참 맑고 아늑하던//한겨울, 찬 우물 가는 길//한때 그 여자 부시도록 아득하던 은은하던”(「찬 우물 가는 길」) 흔적을 정밀하고 고요하게 그려내던 감각의 정반대 편에 격정적이고 역동적인 풍경을 구축해놓은 것이다. 이러한 선명하고도 격정적인 묘사와 재현은 그의 감각이 민활하면서도 섬세한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할 것이다.
우리가 보아왔듯이, 이은채 시편에 농밀하게 녹아 있는 이러한 ‘소리’들과 ‘풍경’들은 그야말로 매혹적인 선율과 역동성을 지닌 채로 존재한다. 그것은 어떤 의미론적 전언(傳言)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 그 자체의 확연한 물질성으로 존재한다. 이 모든 것이 감각의 사제(司祭)인 그녀가 한결같이 견지하려는 시적 기율의 소산인 것이다.
4.
마지막으로 시인은 타자들의 생태학에 시적 초점을 맞춘다. 가령 그녀는 “반백이 되도록 장가는커녕 노동판에서만 뒹군 몸 사철 따라/시름살 많은 과부댁이며 하룻밤 작부집 흐벅진 허릿살에 이골이 난 눈깔로/나 한사코 두근두근 훔쳐보는 당신”(「서해」)을 응시하고, “무르고 깨진 상처의 길 마음 긁힌 흉터의 길”(「구두」)을 놓치지 않는다. 물론 이때 ‘타자(他者)’는 곧 자신으로의 귀환 통로를 만들어놓은 ‘나-그들’이기도 하다.
돌 틈에 묻혀 사는 사람 있었는데요 곁방살이 월세지만 멀쩡한 담을 허물어 원 없이 통유리를 내달았는데요 들어앉아 남의 이름도 파고 맘에 드는 글귀도 새기며 또 묵묵히 살았는데요 두어 평 남짓, 유일한 전시장이자 작업장이기도 한 그 사람 그래도 뒤늦게 제 것 하나쯤은 갖고 싶었는지 산발치 묵정밭 귀퉁일 몇 삽 떠와서는 통유리 아래 한 뼘 고루 만져놓았는데요 산딸나무 한 주도 옮겨놓았는데요 이듬해 산딸나무 그 여인 실한 햇살들 바람들 의좋게 거느리고 반짝이며 나부끼며 서성이기 시작했는데요 손수건만한 그 밭에다 오이 가지 고추는 물론 철 따라 이쁜 꽃들 데려다 앉혀놓고 물도 주고 벌레도 잡아주었는데요 때로는 하릴없이 사분사분 노닐었는데요 유리벽 한 장 사이 유별하기를 몇 해, 돌 같은 그 사람 왠지 찻물만은 잊지 않고 올려두었다나요 두어 평 가득 가만가만 끓게 했다나요 어느 하루 술이 떡이 되어 그 사람 그만 무덤처럼 캄캄하게 웅크리고는 으으, 소리 죽여 울게 되었다던데 산딸나무 그 여인 건너와 말없이 차를 달여 마주놓고는 손을 꼬옥 잡아주더라는 걸요 이슥토록 잡고 있더라는 걸요 짓누르던 설움도 가난도 일순 잠잠해졌다는 쉿! 그랬다는 소문,
웬걸요 그새 볼이 발그레한 딸도 하나 낳아 기른다는 소문!
― 「산딸나무 여인」 전문
시인의 시선은 “돌 틈에 묻혀 사는” 어떤 사람을 향한다. 그의 생애는 월세 곁방에 통유리를 한 채 들어앉아 묵묵히 살아온 어떤 것이었다. 그 두어 평 남짓한 작업장에서 그는 산발치 묵정밭을 떠와서 통유리 아래 흙을 모두고 거기 산딸나무 한 주를 옮겨 심었다. 그런데 거기서 이듬해 산딸나무가 실한 햇살과 바람을 맞더니 반짝이며 나부끼며 서성이기 시작했다. 그의 정성이 담겨가게 된 산딸나무와 그는 “유리벽 한 장 사이 유별하기를 몇 해”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돌 같은 그 사람”이 만취하여 울게 되었을 때, 산딸나무가 손을 꼬옥 잡아주어 짓누르던 설움도 가난도 일순 잠잠해졌다는 소문을 화자는 능청스레 재현한다. 아니 그것은 어느새 “볼이 발그레한 딸도 하나 낳아 기른다는 소문”으로 번져간다. 산기슭이나 산골짜기에서 흔히 자라며, 꽃과 가을에 붉게 물드는 단풍을 보기 위해 정원에 심기도 하는 산딸나무의 속성을 빌려 일종의 상상적 연애담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시선은 “설핏설핏 눈을 주던 저녁노을 구불구불구불 꼬리를 무는 골목 끝 난전/노을이 걸어 내려와 노인의 손등을 물들이고 있었어/팔순 이마에 들어 글썽이는/짧은, 꼬리노을탕”(「꼬리노을탕」) 같은 묘사에서 어둑한 구석에서 삶을 이어가는 타자들에 대한 관찰과 묘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음 시편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향촌 롯데아파트 상가 입구에 커다랗게 걸린 <옷수선> 간판
그걸 업고 더듬 더듬 내려서는 지하 초입에 다시 <옷수선> 입간판이 불쑥 발을 겁니다
드르륵 미닫이를 열면
잘해야 두 평
舊도심 모 백화점 자리 신신양복점에서 무려 28년을 근속했다던 쥔아저씨
어깨 너머 작업대와 재봉틀 등받이의자가 그의 늙은 아내처럼 묵묵히 들어앉아 있습니다
해마다 늘어나는 허리둘레와 멋대로 오르내리는 치마길이가 서둘러 다녀가는 복도 끝
접의자 두어 개
누군가 들러 바둑이라도 두는지 이곳 신도시 주민들이 앉았다 가는지
부실한 탁자의 정수리가 하루 잠깐씩 빛납니다
이제 슬슬 올이 풀리기 시작하는 손끝, 깊어지는 미간의 주름이여
숭숭 바람든 생 행여 감추어졌던 상처도 그리 깊이 어루만지면 감쪽같이 짜깁기되겠는지요
덜덜거리는 선풍기
바람을 타고 아늑하게 뭉치는 하루치의 실밥들
느닷없이 한기가 몰려와 그걸 그만 한줌 몰래 쓸어안고 뭉실뭉실 떠오르는 지하계단
그것들이 우묵한 주발 속 고슬고슬 훈김이 되는 香村입니다
― 「우묵한 주발」 전문
“향촌 롯데아파트 상가 입구에 커다랗게 걸린 <옷수선> 간판”은 우리 시대의 외곽을 형성하는 이름없는 장삼이사들의 생활 공간이다. 잘 해야 두 평 남짓한 “舊도심 모 백화점 자리 신신양복점”에서 28년 동안 일을 했다는 ‘쥔아저씨’는 어깨 너머 작업대와 재봉틀 등받이의자를 ‘늙은 아내’처럼 오랜 정으로 데리고 살아왔다. 양복점 주위에 놓여 있는 “접의자 두어 개” 역시 이들의 고단한 삶을 유추케 한다. “이제 슬슬 올이 풀리기 시작하는 손끝, 깊어지는 미간의 주름”은 그의 오랜 세월을 말하는 동시에 “숭숭 바람든 생 행여 감추어졌던 상처”를 선명하게 말해주기도 한다. 바람을 타고 뭉쳐지는 실밥들이 한기를 몰래 쓸어안고 떠오르는 지하계단에서, 시인은 “그것들이 우묵한 주발 속 고슬고슬 훈김이 되는 香村”을 역설적으로 상상해보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한기를 물리치는 따듯함의 감각이 그녀 시편을 온통 감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짖지 못하는 개를 바라보면서 “긴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앉아있던 햇살이 그 개의 등줄기를 어루만지고 있다”(「벙어리 개」)는 묘사와 깊이 상통한다. 이처럼 이은채 시편에는 대상에 대한 따듯한 비애가 녹아 있고, 그것은 선명하고도 활력 있는 감각에 의해 감싸여 있는 것이다.
(애지 2007년 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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