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감성과 지성을 통합하는 수필정신의 확대
-유성호
Ⅰ. 수필문학의 지형
우리문학 전체의 지형 안에서 ‘수필’ 혹은 ‘에세이’가 차지하는 위치와 비중은 두가지 측면에서 이중적이다. 수필창작에 종사하는 인적구성의 폭이 매우 넓어진 데 비해서 수필에 대한 비평문화는 턱없이 영성하다는 점이 그 하나이고, 창작이 보여주고 있는 활성화 수준에 비해서 수필이 문학계에서 거론되고 장려되는 모습이 여전히 주변성과 외곽성을 못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 다른 하나이다. 이와 같이 현단계 우리 수필문학이 가지고 있는 두가지 모순된 위상은 수필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장르적 성격을 알려주는 동시에, 우리가 앞으로 정립해가야 할 수필정신에 대해 매우 암시적인 지표를 제공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같은 모순된 위상을 면밀하게 해석하여, 수필이 우리문학 전체 영역에서 종요로운 역할과 기능을 담당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먼저 수필을 쓰는 작가들의 숫자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는 반면 수필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비평 문화가 현저하게 부재하다는 지적은 사실 수필의 장르적 성격에서 그 일차적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본래 수필은 작가 자신의 자기탐색 혹은 자기성찰의 성격이 짙은 산문문학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수필을 쓰는 주체는 자신의 주변에서 친숙하게 경험할 수 있는 일상적 삶에 자신의 언어적 초점을 맞추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순간적인 감동과 자각을 매우 평이하고 친화력 높은 문장으로 독자들에게 제시하게 된다. 그만큼 독자가 수필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해석하는 데 드는 품은 타 장르에 비해 그리 크지 않게 되고,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수필은 이해와 해석이 용이한 언어적 형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해석이 다소 용이하다는 것이 곧바로 비평의 무용론으로 연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비교적 난해성이 적다 하더라도, 수필의 세계 역시 비평가의 해석과 평가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필작가와 독자를 소통케 하는 비평의 역동적인 역할은 재삼 강조될 필요가 있다.
그 다음으로 수필이 매우 활발하게 창작되고 있고 수필을 게재하고 있는 매체도 적지 않은 데 비해 수필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 아직도 열악한 까닭은 우리 문학계가 지금까지도 여전히 ‘본격(순수)문학/대중문학’의 양분법을 완강하게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분법(分法)에 의하면, 대개 본격(순수)문학은 대중문학에 비해 눈높이가 높고 삶의 구경적(究竟的)인 문제를 탐색하는 것으로서 결국 그 장르적 양상은 시와 소설과 비평으로 모아진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수필작가나 작품에 대해서는 일종의 아마추어리즘의 혐의를 씌우면서 본격적인 공론의 장으로 편입시키지 않는다. 나아가 수필작가들에 대해서는 그 흔한 문학상조차 인색한 것이 현실이다. 물론 수필이라는 것이 쓰기 전에 어떤 계획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의 느낌「기분」정서 등을 표현하는 산문 양식의 한 장르라고 이해되고 있고, 나아가 무형식의 형식을 가진 비교적 짧고 개인적이며 서정적인 특성을 가진 산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문학이 갖는 고유한 허구적·미학적 성격은 다소 취약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수필 안에는 수필 나름의 고유한 세계 이해방식과 표현방식이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 같은 주변 장르로서의 인식관행은 점차 완화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수필은 그 특유의 일상성, 무형식성, 평이성 등을 특색으로 하면서 비판적 문제제기보다는 공감의 영역을 지향하는 성과를 우리문학에서 만만치 않게 거두고 있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수필문학의 낮은 위상 평가에 대하여 깊은 반성적 시선을 던지면서, 한걸음 더 나아가 수필미학의 정립과 평가를 적극적으로 해가야 할 것이다.
Ⅱ. 수필문학의 흐름과 경향
현재 국내에서 발간되고 있는 수필전문지들은 그 숫자가 매우 많다. 그들의 목록을 예거하면 「월간 에세이」「수필문학」「수필과 비평」「계간수필」「수필」「수필춘추」「창작수필」「한국수필」「현대수필」등인데 이러한 수필전문지들은 열악한 자본 환경에서도 수필문학에 대한 깊은 열정과 헌신으로 이같은 활황을 연출해내고 있다. 더구나 국내 유수의 문예지들 역시 그 안에 산문 혹은 수필 코너를 두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아, 사실 수필문학의 지면 상황은 시 다음으로 호조건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외적 조건에 기반을 두면서, 지난 한해의 수필문학은 그 활발한 외관과 함께 내실에서도 한단계 진척된 성과를 보여주었다.
먼저 지난 한해 동안의 수필문학은 그간 우리 수필문학이 주로 보여온 감성 위주의 신변잡기적 경수필(輕隨筆)에서 많이 벗어나, 지성의 활발한 개입을 통해 시대정신에 대해 성찰하는 일종의 중수필(重隨筆)적 경향을 비중있게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직도 수필문학의 주류는 작가의 고백성에 무게중심이 놓이는 경수필들이다. 그 안에는 나날의 삶에 대한 가벼운 감상이나 깨달음 혹은 사랑의 감성들이 녹아 있다. 이러한 경향은 여전히 강세를 띠면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으로 올수록 우리 수필문학은 사물의 본질에 대한 천착이나 사회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지성적 성찰을 동반해가고 있다. 이 점에서 지난 한해의 우리 수필문학은 감성 편향에서 지성 쪽으로 한걸음 나아간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원래 ‘감성’은 수동성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유한성을 나타내는 반면, 인간과 세계를 잇는 원초적 유대고리의 역할을 한다. 즉 이론적 인식에서는 이성적 사고를 위한 감각적 소재를 제공하고, 실천적·도덕적 생활에서는 이성의 지배와 통솔을 받을 소지를 마련하며, 미적인식에서는 자신의 순수한 모습을 나타냄으로써 인간적 생의 상징적 징표가 된다. 따라서 감성적 세계인식은 매우 소중한 감각적·도덕적·미적 계기를 우리 인간에게 부여한다. 우리 수필문학이 이러한 감성에 토대를 여전히 두고 있다는 것은, 그 점에서 필연적이고 장려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감성 편향이 될 때인데, 그 편향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기능은 인간의 합리성에 바탕을 둔 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지성’은 ‘감성’과는 달리 사물을 개념에 의하여 사고하거나 또는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판정하는 오성적(悟性的)인 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그 기능은 합리성, 객관성, 진리 타당성의 검증과 설명에 놓여 있다. 우리 수필문학이 사물에 대한 감성적 해석과 반응에서부터 사회현상 전반에 걸친 이러한 합리성과 객관성을 지향하고 나선 것부터가 수필정신의 확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수필문학에 지성이 개입하는 것은 어느 면에서는 수필 고유의 감성적 기능을 잠식하는 듯이 보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수필문학의 심미적·비평적 기능을 제고하여 수필문학의 본령을 한단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비평가인 루카치는 수필을 일러 “좀처럼 붙잡기 힘든 인간 영혼의 가장 은밀한 곳에 자리잡은 마음의 미세한 풍경”을 그리는 양식이라고 했는데, 이러한 은밀하고 신비로운 운명의 영역에 대해 수필문학은 다른 어느 장르보다도 직접성과 균형성을 갖추면서 천착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에 출간된 전문 수필작가의 수필집 가운데 정봉구의 「꿈과 꿈」, 허세욱의 「임대마차」, 정호경의 「폐선」, 최진호의 「생명의 바다」등은 그 점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라고 할 것이다. 이들 수필집은 감성과 지성의 균형있는 조화를 통해 사물과 사회현상의 실재와 작가 스스로의 인생관을 동시에 노출한 노작들이다.
그 다음으로 지난해 수필 문학계에서 특징적으로 두드러지는 면은, 전문적인 수필작가들의 수필집 못지않게 다른 장르의 창작에 진력하고 있는 시인이나 작가들이 자신의 장르 외적인 발언을 묶어 이른바 ‘산문집’의 형식으로 세상에 내놓은 성과가 많다는 사실에 있다. 사실 ‘산문집’을 일러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수필문학이라고 하기 어려운 부분도 적지 않다. 왜냐하면 이들의 언어는 작가로서의 자의식과 문화비평적 성격을 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필이라는 것이 전문적인 수필언어를 통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非)장르적인 언어를 빌린다는 점에서 이들 시인, 혹은 작가들의 산문집 역시 수필문학이 견지하는 일반적 속성인 일상성, 무형식성, 평이성을 튼실히 구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수필문학의 확대된 외연을 보여주는 실증이라 할 것이다. 아래에서 그 개황을 살펴보자.
Ⅲ. 수필문학의 확대된 외연
먼저 시인들이 펴낸 산문집들을 살펴보자. 시인들이 펴내고 있는 산문집들은 한결같이 지난 시절에 대한 남다른 기억과 자신의 시적 이념이기도 한 생태적 사유를 적절하게 결합한 성과들이 많다.
이윤학의 「푸른 자전거」는, 그의 시가 그러하듯이, 자신의 유년에 대한 음각의 기록이다. 시인은 어린시절 남의 뽕밭에 들어갔다가 들키거나 외당숙의 오토바이를 몰래 타보려다 사고를 일으킨 일종의 불량성의 기억에서부터, 다른 시인들과 교유하며 가난과 고독의 삶을 꾸려가는 최근까지의 삶을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정신병에 걸려 결국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 중학교 시절의 짝사랑, 2주 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애완견 발바리, 놀라운 기억력을 지니고 있던 동네 명물 키다리 아저씨 등의 이야기도 적절하게 삽입하고 있다. 시인은 이러한 시간의 음각들을 통해 우리 삶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짙은 아우라를 보여주고 있다. 안도현의 「사람」역시 지난 시간에 대한 가난하고도 따듯한 추억의 사색록이다. 그는 라면, 만년필, 초등학교 담임선생님 등 기억의 식솔들을 하나하나 찾아 나서는데, 그 정신의 궁극은 “똥냄새로부터 멀어지면서 우리는 고향을 잃었다”라는 생태주의적 세계관에서 완성되고 있다. 나태주의 「시골사람, 시골선생님」은 오랜 동안 순수서정의 권역을 지켜온 향토시인으로서, 그리고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서의 문학적, 교육적 안목이 따스하게 스며 있는 저자의 첫 산문집인데 이 또한 전체적으로 생태적이고 순수 원형적인 인간정신에 대한 계세(戒世)를 담고 있다. 장석주의 「마음의 황금정원」역시 대도시의 삶을 뒤로 하고 경기도 안성에서 새 거처를 마련한 시인의 산문집으로서, 비평적 감수성과 서정적 공감의 문체가 어우러지고 있다.
박남준의 「꽃이 진다 꽃이 핀다」는 시인이 오랫동안 견지해왔던 시적 주제이기도 한 ‘생명’과 ‘자연’에 대한 애정의 고백을 담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깃들이게 된 옛 무당집에서 소꿉장난처럼 시작한 살림에서 그가 깨달은 것은 적게 벌어 적게 쓴다는 것과 가능한 한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친환경적인 삶을 산다는 것이었다. 시인은 가난을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호흡하며 주변의 뭇 생명을 벗삼아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오고 있는데, 집 앞 개울가로 세수하러 가면서도 먼저 와 있는 새들의 눈치를 보는 시인의 시선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생태적 사유의 길을 줄곧 걸어가고 있는 시인 허만하의 「길과 풍경과 시」는 박남준의 것이 서정적인 것에 집중되어 있는 데 비해 매우 철학적이고 메타적인 성찰을 담고 있다. “산방산 은백색 바위의 꼿꼿한 자세가 수선화의 향기에 버금가는 황홀한 향기를 뿜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벼랑으로 끌려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추사체는 생시에 추사가 쳐다보았던 산방산 벼랑이 내뿜는 향기를 머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그의 안목에서 예술과 삶과 자연을 동일성의 원리로 파악하는 거장의 향취가 느껴진다.
젊은 여성 시인 김선우의 「물밑에 달이 열릴 때」는, 그녀의 첫 시집이 그러했듯이, ‘여성성’의 화두를 더욱 가열하게 밀고나가고 있다. 여성 혹은 여성성에 대한 시인의 사유는 “큰아들을 잃고 남아를 생산해야 한다는 불문율 속에서 아홉번의 산고를 치른 어머니”를 관찰하는 데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큰오라비의 이른 죽음이 아니었다면 그 자신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리라 믿는 시인에게 여성(성)은 커다란 결핍으로 다가온다. 그 결핍을 더욱 근본화하고 철저하게 사유하고 있는 흔적이 이 산문집 구석구석에서 빛나고 있다. 송명희의 「나는 이런 남자가 좋다」는 개인적인 문제에 대한 고백보다는 문화비평적 에세이를 지향하고 있는데, 그림까지 손수 그리면서 지성과 감성을 교직하는 저자의 필력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에세이집이다.
다음은 소설가들의 산문집이다. 작가들의 산문은 시인들의 그것과는 일정하게 다른 성격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이야기성’의 현저한 강세로 나타난다. 그렇다고 그것이 그들의 소설과 궤를 같이 하는 ‘서사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서사의 흔적이 여기저기 녹아 있는 일종의 ‘서사의 편린’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알맞을 것이다.
먼저 현기영의 「바다와 술잔」은 제주 출신의 작가가 담고 있는 변방인으로서의 고백록이다. 이른바 ‘탈중심의 변방정신’으로 작가는 소설로는 담을 수 없었던 우리네 삶의 진실성을 역시 서사성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기록하고 있다. 그 얼개를 작가는 ‘술잔’과 ‘바다’라는 상징으로 온축하고 있는데, 말하자면 “자, 그때 그 절망과 슬픔을 위해서! 나는 술잔을 들어서 술의 수면을 쪽빛 바다의 수평선에 맞춘다. 술잔 속의 술이 바다의 쪽빛으로 물들고, 나는 그 쪽빛을 꿀꺽 들이켠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추억’이란 사실 온통 죽음으로 뒤섞여 있는 현대사의 속살이기도 하다. 누구보다도 제주 4·3사건의 정치적 의미 복원을 위해 매진했던 작가로서는 당연한 발화법이라고 할 것이다.
박완서의 「두부」는 경기도 구리시의 아치울에 살고 있는 저자가 계절따라 변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느끼는 잔잔한 감동을 작가 특유의 감칠맛 나는 문장으로 담아낸 성과이다. 또한 「두부」는 작가의 고향인 개성과 그곳 사람들, 작가가 그려온 귀향의 정경, 가족의 의미 등을 섬세하고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는 생활산문이기도 하다. 한국의 대표적인 이야기꾼의 산문집답게 어느 글 하나 이야기가 담기지 않은 것이 없다. 박범신의 「젊은 사슴에 관한 은유」에는 소설가로서의 자의식이 짙게 담겨 있다. 특히 마지막 제4장 ‘작가이고 아버지인 그에게’에 실린 글들에서 작가는 일곱 식구가 좁다란 두칸짜리 방에서 부대끼며 살던 성장기의 추억에서부터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골 초등학교 교사 시절, 절필선언 시절, 방황과 모색 끝에 소설 쓰기를 재개한 이야기 등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자기자신을 중심에 놓은 자전적 에세이들의 모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승원의 「바닷가 학교」는 자신의 고향인 장흥 율산마을에서 길어올린 고향집 뒤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97년에 낙향하여 “바닷물과 갯벌밭과 거기 서식하는 노을과 바람과 안개와 햇살과 물고기와 새와 달랑게 꽃게와 조개들의 잔망스러운 몸짓과 숨결”을 실컷 느끼면서 작가는 자신을 “바닷가 학교의 커리큘럼에 따라, 바다의 시간과 순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 자처하고 있다. 결국 이 산문집은 그 ‘바닷가 학교’에서 보고 배운 것들을 직접 찍은 사진들과 함께 기록한 결과이다.
함정임의 「하찮음에 관하여」는 자신의 삶에 찾아온 상실감과 기억에 대해 작가가 오랜 시간 공들여 기록한 산문집이다. “나는 원칙적으로 삶은 미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작가는 적고 있는데, 그 미적 태도가 모든 글에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현실의 삶은 반드시 아름답거나 소망스럽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삶을 운영하는 주체로서 자신은 어디까지나 미학적 접근을 포기할 수 없다는 다짐을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그 미학적 접근을 위해 그녀가 택한 두가지 실존의 방식이 바로 소설과 여행이다. 책은 이같은 그녀의 미학화 과정을 섬세하게 담아 보여주고 있다.
서영은의 「안쪽으로의 여행」은 사진작가 탁인아의 사진작업 속에서 작가가 길어올린 영감들을 써내려간 글이다. 사진과 글이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안으로 향한 눈에 잡힌 생각의 실마리를 코로 잡아 작가는 뜨개질 해나가듯 담담하게 풀어낸다는 점에서 글과 사진은 고스란히 겹치고 있기도 하다. 버려진 장독대, 시골집 뒤뜰에 아무렇게나 자란 풀과 꽃들, 고목, 주름투성이 얼굴의 노인들 모습 속에서 작가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과 마음의 고향에 남아있는 것들을 모아 오롯이 보여준다.
이윤기의 「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은 상대적으로 짧은 글들을 모으고 있다. 유년과 성장기, 작가 및 번역가로서의 삶을 다룬 자전적 이야기들, 자신이 사는 동네에 관한 글들, 음식에 얽힌 추억들, 신화와 언어에 관한 글들이 다양하게 묶였다. 책 제목에서 말하는 ‘괴물’은, 그에게는 ‘심심풀이’와 ‘얼렁뚱땅’이었다. 그는 그 두가지 괴물을 죽이고자 무진 애를 써왔으나 자신이 죽인 것이 그들이 아닌 ‘시간’은 아닌지 때때로 궁금해한다.
김영하의 「포스트잇」은 이 젊은 소설가 특유의 발랄한 발상과 상상력, 그리고 그것의 구성이 돋보이는 경쾌한 산문집이다. 그는 자신의 첫 산문집을 펴내며 ‘잡문’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상식을 일거에 반전시키는 도발적 상상력으로 소설을 발표할 때마다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가는 도발적 상상력과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로 매스컴에서 잡문의 주문이 많았다고 한다. ‘포스트잇’은 진저리치게 하며 휙 지나가는 전혀 뛰어난 생각이나 약속 등을 붙잡거나 잊지 않기 위한 메모장이 아닌가. 이것을 제목으로 삼은 이 산문집에서 작가는 현실과 문학, 인터넷, 게임, 사회현상, 추억과 죽음에 대한 단상들을 재미있게 펼쳐보이고 있다.
이처럼 적지 않은 수의 시인과 작가들이 자신의 미학과 경험과 편견과 기억을 꼭꼭 눌러 담은 산문집을 잇따라 간행함으로써 우리 수필문학의 외연은 참으로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전문적인 수필작가들의 수필집 러시와 함께 이같은 작가들의 가세로 우리 수필문학은 감성과 지성의 조화로운 균형을 얻게 된 것이다.
Ⅳ. 수필문학의 미래
현재 우리문단에서 수필작가로 등단하여 이러저러한 매체에 수필을 발표하고 있는 이들의 숫자는 줄잡아 1천여명을 훨씬 상회한다. 의외로 방대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처럼 두터운 창작층은 이제 더욱 정교하게 정제된 발표 시스템과 비평문화, 그리고 수필문학 자체의 성향 변모를 통해 그 기능과 역할을 확대해가야 한다.
아직도 우리 주위에서 “수필은 한 자유로운 마음의 산책, 즉 불규칙하고 소화되지 않는 작품이며, 규칙적이고 질서 잡힌 작문이 아니다”라는 새뮤얼 존슨의 정의나, “수필은 마음속에 표현되지 않은 채 숨어 있는 관념「기분」정서를 표현하는 하나의 시도다. 그것은 관념이라든지 기분·정서 등에 상응하는 유형을 말로 창조하려고 하는 무형식의 시도다”라는 리드의 정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만큼 수필문학은 무형식성, 감성 지향성 등을 지속해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격을 십분 승인하면서도 거기에 심미적인 안목과 비평정신을 결합하여 일종의 ‘비평적 에세이(critical essay)’로의 확대를 꾀하는 쪽으로 우리 수필문학은 발전해가야 할 것이라는 제언을 적고자 한다. 이때 수필에 대한 비평문화의 활성화는 긴요하게 요청되는 문화적 인프라이다. 이 점에서 특히 시와 소설에 치우쳐 있는 비평인력들이 수필에 대한 해석과 감상, 평가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결국 동일성의 미학에 바탕을 둔 감동과 긍정의 미학은 수필문학의 종요로운 존재 근거가 된다. 거기에 타자에 대한 적극적 옹호와 주류문화에 대한 비판을 결합하여 인류보편의 언어를 추구해가는 것이, 이미 다매체시대에 접어든 우리사회에서 수필 문학이 존속하고 나아가 제역할을 확충해갈 수 있는 길이라고 할 것이다. 이는 감성과 지성의 결합을 통한 수필정신의 확대를 이루어가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지난 한해는 이같은 결절(結節)과 분기(分岐)의 가능성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여준 한해였다고 할 수 있다.
문예연감 2003
*
유성호
1964년생으로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9년 대한매일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됐다. 2001년에 대산창작기금과 제13회 김달진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교원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지은 책으로 [한국현대시의 형상과 논리]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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