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천, '무등에세이'「당신의 부처님은 어떠신지」『무등일보』2011. 5.13일자
※정윤천 시인은 이원식 시집『친절한 피카소』의 해설을 써주신 분이다.
당신의 부처님은 어떠신지
정윤천(시인)
얼마 전에 한 시조 시인으로부터 꽤나 엉뚱한 부탁을 받았다. 근간에 자신의 세번 째 시조집을 발간하게 되는데 그 시집의 해설을 맡아달라는 거였다. 이력을 살펴보니 그의 구질(?)이며 구력 또한 만만한 선수는 아니었다.
평소 후배들이나 주위의 시인들이 펴내는 시집이며 저작물에 그러저러한 사족을 달아 주었던 예는 몇 차례 있었으나, 전문 시조 시인의 시조집 한 권을 처음부터 '몽똥그려' 살펴야 하는 일은 마땅히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원고를 건네받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승낙의 뜻을 비치게 된 것은 순전히 그가 쓴 시조들의 내용과 시의 순간들이 빚어내는 서늘한 여백들 때문이었다.
"노점상인 몇이 모여/ 점심을 먹습니다// 간간이 던져주는/ 밥술 혹은 반찬 몇 점// 하나 둘 모여듭니다/ 동네 새들/ 고양이들." -<만다라의 품>전문
똑같은 시행의 업일지라도 현대적 감각의 자유시에 비해 어딘지 경직돼 있었거나 구태의연으로 여겨왔던, 무지하고도 몽매한 나의 시조관에 한 사발의 찬물을 끼얹어 주었던 빛나는 마주침의 순간이 거기 있었다. 이쯤 되면 작금의 시단에서 쓰여지는 우리 시대의 시조는 더 이상 춘향이 목에 채워진 형틀과도 같은 정형 율조에 갇혀, 자연이나 인물 예찬 쪽에 기운 한가하고 맥빠진 글자 놀음이 아니었다.
말이 나온 김에 글을 이루는 자의 심성이 먹물처럼 배어 나왔던 불심과도 닮은 하심(下心)의 순간을 안겨주는 아름다운 시 한 수만 더 읽고 가기로 하자. 기필코 시인들은 가난하므로, 사실 당신에게 드리울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이것 밖에는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노점상 할머니에게/ 만 원짜리 이불을 샀다// 깎지도 않았는데/ 팔천 원만 받으신다// 베개피 오천 원짜리/ 얼른 만원 드리고 왔다" -<유쾌한 품앗이> 전문
시쳇말로 제목이 죽인다. "유쾌한 품앗이"라니. 그러면 이제 당신에게도 묻겠다. 위에 있는 시를 읽으며 그대들도 유쾌해 지는가라고, 유쾌함은 어디서 어떻게 오고, 시방 우리들은 손톱이나 발톱만큼이라도 유쾌한 상황 속에서 서 있는 것인가라고...
며칠 전의 부처님 오신 날도 우리에게 그렇게 다녀가셨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절에 가서 부처님의 형상만일지라도 그 앞에서 깊고 낮게 절을 올린다. 어떤 이는 "귀의 할랑께 받아주시란 말이요." 통사정을 놓기도 한다. 이럴 때의 우리들에게 잊힐만 하면 다녀가시는 부처님은 더 이상 어렵고도 오묘한 법문이었거나 고상한 설법의 진앙만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저 한번 낮아져 보거나 둥그러워져 본다는 일. 왠지 그러고만 싶어져 오는 순간 앞으로 닥치는 착하고 선해짐의 시간에 대한 성찰이라면, 부처는 이미 내 안에도 벌써 똬리를 틀고 좌정하고 계셨고, '엎 브래지어'로 끌어 올려맨 그대의 가슴 안에도 지극하게 자리하고 있을 일이었다.
필자 역시 종교인은 아니어서, 다만 뭇 사람들이 그저 그렇게 위아래를 흘겨보기 일쑤인 한 사람의 시인일 뿐이어서, 일체의 선입견을 물리치고 당당히 설하기로 한다. 눈이 내리는 백야의 전야에 "크리스 마스"가 다녀가시는 일도 더더욱 그러려니와 세세년년 부처가 다녀가시는 '축 성탄'의 제일(際日)들은 마땅히 경하스러운 외경의 일이었음에 틀림없이 여겨진다.
당신의 부처님은 잘 다녀가시었는지. 태어나고 살고, 그리고 죽어가는 일에 얽히고설킨 우리들 모두의 벼라 별 치사함과 고귀함에 대하여, 인간의 슬픔과 위무와 악수와 사랑이며 쓰라림에 대하여, 흔적도 없이 다녀가신 우리들의 부처님은 우리들이 매단 연등의 봉등 한 등을 저 염화의 미소 속으로 거두어 주고는 떠나가셨는지. "뭐꼬 뭐꼬" 새들은 그 곁에서, 이 불통과 불화의 세월들에 대고 한 마디씩 지저귀어 주기는 하였는지.
마지막으로, 한 시인에게 다가가 한 가지만 더 묻기로 하고 닫기로 한다. 우리들 생이 다소나마 '유쾌'해질 수 있으려면, 너나들이로 이천 원쯤, 삼천 원쯤 '깎지도'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건네주는 그런 '품앗이' 같은 것이었느냐고.
『무등일보』2011. 5.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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