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시집/第3詩集·친절한 피카소·황금알, 2011

《문학청춘》에 실린 이원식 시집『친절한 피카소』서평

이원식 시인 2011. 9. 1. 00:00

이원식 시조집 친절한 피카소서평/ 문학청춘2011. 가을호(pp.243-247)

  

 

 

 

보고, 뿌리고, 품어 그려내는 꽃숭어리

- 이원식 시집 친절한 피카소

   

                                                                                                                   호병탁(문학평론가)

   

따뜻이 품어 이룬 불성 - 이원식의 친절한 피카소

 

   세상과의 싸움은 수사학을 낳고 자신과의 싸움은 시를 낳는다는 말이 있다. 자신과의 싸움이란 좁은 자아의 굴레를 벗어나 세상의 객관으로 나가야 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며, 세상과의 싸움이란 자신의 자아 원리에 세상을 자기 주관으로 끌어드리려 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때 세상과 싸우는 사람은 비평가가 될 것이고 자기와 싸우는 사람은 시인이 될 것이다. 맞는 말이다. 세상은 시인에게 있어 좁쌀만 한 빛이라도 감지하고 연약한 숨결조차 품어야 할 삶의 현장이지 투쟁의 대상은 결코 아니다. 이런 사실은 정치사회현실과 같은 세상과의 투쟁을 다룬 시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성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만 봐도 쉽게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시인들이 세상과 싸우는 비평가의 이념과 관념에 귀를 쫑긋댄다. 그들이 품어야할 세상의 작은 진실은 이념에 종속되어 감정이입의 도구가 된다. 아침 이슬에 반짝이는 풀잎의 청량한 빛과 푸른 생명력을 민중의 눈물과 저항으로 전락시키는 경우가 그 한 예다. 우리는 서정시, 특히 전통적 운율을 지키는 시조에 대해 자연을 도피처로 삼아 음풍농월이나 한다는 비판을 심심찮게 들어왔다. 엄격한 정형률이 예술작품의 심미학적 효과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차치하고 이런 엉뚱한 비판은 가당치 않다. 사실 풀을 풀 그대로, 엄정한 생태학적인 눈으로 그것의 반짝이는 개별성을 포착하여 노래한 시가 얼마나 있는가. 풀을 노래했더라도 그것을 빌어서 세상사의 이런저런 국면을 표현하는 자신들의 주관성 표출의 도구로 삼지는 않았던가.

   시인은 한 마리 벌이 되어 꽃 속의 고요로 들어가야 한다. 그 생명의 경이를, 그 숨소리를, 그 바스락대는 정적을 품어 안아야 한다. 시인은 세상과 싸우는 사람이 아니다.

   자연의 고요를 있는 그대로, 숨소리 하나에도 흔들릴세라 세심하게 그것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시가 있다.

 

 

반쯤 헐린/ 담장 아래/ 누렁이/ 빈 밥그릇// 사흘을/ 울고 떠난/ 낙숫물/ 고여 있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떠도는/ 꽃잎 한 장

                                                                                                                                                       - 공화(空華), 전문

   

   담장 아래, 그것도 반절은 헐린 담장 아래 개 밥그릇이 놓여있다. 밥그릇의 임자인 누렁이는 어디로인지 떠나고 없어 그릇에는 밥이 없다. 대신 사흘 내린 빗물이 떠나간 누렁이의 눈물처럼 고여 있다. 모든 사물의 움직임이 정지된 고요한 정경이다. 이원식은 밥그릇에 고여 있는 빗물을 보며 대지의 만물을 고루 적시는 비의 불성을 본다. 비는 유정물, 무정물을 가리지 않는다. 산에도 강에도, 기와지붕 위에도 초가지붕 위에도 또 여기 헐린 담장 아래 개 밥그릇에도 내린다. 인간세계는 신분에 귀천의 차별이 있고 거주에 남북의 구별이 있지만 불성에는 귀천, 남북의 분별이 없다. 선법의 불성평등론은 고금을 통해 이처럼 빗물로 비유되어 설명되고 있다.

   이 고요한 정경에 하나의 여린 움직임이 있다. 낙숫물 위를 떠도는 꽃잎 한 장이다. 이 작은 움직임은 고요를 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가 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 꽃잎은 낙숫물이 마를 때까지 고요를 지킬 것이다. 어떤 이유로 누렁이가 떠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인은 애잔한 그러나 잡티 하나 없는 눈길로 임자 없는 빈 그릇을 바라본다. 따라서 고여 있는 빗물은 시인의 눈에 눈물로 다가온다.

   이원식은 일상의 남루에서 삶의 정겨움을 본다. 또한 세상이 거들떠보지 않는 작은 진실들을 귀하게 여긴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비천한 것들을 따뜻이 품으려 한다.

 

유리창을 맴돈 지/ 얼마나 지났을까// 창문을 두드리며/ 길을 묻는 빗방울 소리// 껍질만 남을 때까지// 위빠사나/ 위빠사나

                                                                                                                                          - () 무당벌레, 전문

   

   시인은 이미 풍장이라는 시를 통해 유리창에 갇히어’ ‘박제가 된 무당벌레를 노래한 적이 있다. 그는 이번 시집을 통해서도 이 작고 미천한 것에 눈길을 다시 모은다. 무당벌레 한 마리가 어쩌다 유리창 안에 갇혀 이리저리 맴돌고 있다. 순간적인 시적 체험을 포착하는 시인은 눈도 밝지만 귀도 밝다. 그는 무당벌레가 내는 소리를 창문을 두드리며밖으로 나갈 길을 묻는’ ‘빗방울 소리로 듣는다. 그의 밝은 귀는 절묘한 의성어를 창출한다. 결국 무당벌레는 말라 껍질만 남아 바스러질 것이지만 이 작은 곤충은 그때까지 쉴 새 없이 맴돌 것이다. 밖으로 탈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바스락 대는 소리가 위빠사나, 위빠사나. 여기서 위빠사나는 두 가지 기능으로 작동한다. 하나는 바로 바스락거리는 소리의 의성어요, 또 하나는 불가의 수행법이다. 시인은 작은 곤충이 내는 소리를 묘사하기 위해 원래의 거친 소리 를 의도적으로 가벼운 경성(經聲) ‘로 바꾼 것 같다.

   ‘위파사나는 일종의 명상 수행법으로, 우리의 일상적인 활동과 마음 씀에 대해 관찰하고, 그 관찰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위파사나란 파사나의 복합어로 란 몸과 마음의 세 가지 특성, 즉 무상, 고통, 무아를 뜻하며 파사나는 이에 대한 바른 이해 또는 지혜를 말한다. 따라서 위파사나란 사물에 대한 바른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시인은 갇힌 무당벌레가 죽을 때까지 자신의 본성을 꿰뚫어 깨달음을 얻고자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결국 모든 것은 변하는 것(무상)이며 자기도 없는 것(무아)을 깨치고 벌레는 소멸할 것이다.

   미천한 것들에 던지는 따뜻한 눈길은 불가(佛家)적 사유를 배경으로 다른 시편에도 나타난다. 시집의 표제작인 친절한 피카소노스님산새들에게 공양을 베풀고, 만다라의 품에서는 가난한 노점상들까지 동네 새들고양이들에게 밥술을 나눈다.

   사족 하나, 창에 갇힌 무당벌레처럼 시적 체험의 순간적인 포착, 그 체험을 정형으로 짧게 압축하여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이원식은 시조의 기본적 원리에 경이로울 정도로 충실하다. 이번 시집에도 정형의 기본 틀인 단수만을 발표함으로 시조에 대한 그의 철저함과 엄격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정형의 형식적 제약은 시어의 선택에 있어서도 제한을 주는 것이 아닌가하는 점이 눈에 띈다. 예로 點頭, 賓雀, 下跡, 淚痕, 痛點, 蜘蛛, 瘢痕, 塵劫, 銀簪과 같은 한자어의 사용을 들 수 있다. 음절의 제약으로 위의 한자어들을 풀어 쓸 수는 없었을 터이다. 하지만 작품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독자들이 다 유식한 것도 아니다.

단아한 문체로 아름답게 일구어낸 그의 시편들을 보면 이런 작은 문제는 옥에 티도 아니다. 특히 물위에 비친 세상은 강물과 동행할 수 없다강물 보법, ‘다포를 담근 물에 뛰어드는 벌레 한 마리를 그린 무리수를 두다, ‘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바깥인지막히는 곳이 없어야 한다는 통문등은 절창이다. 이런 명편들을 다루지 못해 안타깝다.

    시집을 덮었어도 내 귀에는 창에 갇힌 무당벌레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낙숫물 위를 떠도는 꽃잎 한 장이 오래 오래 내 눈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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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병탁/ 1949년 충남 부여 출생. 한국외국어대 중어과, 원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시집 칠산주막평론집 나비의 궤적

 

 

 

                                                     《문학청춘》2011.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