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시집/第3詩集·친절한 피카소·황금알, 2011

《시조시학》에 실린 이원식 시집『친절한 피카소』서평

이원식 시인 2011. 9. 21. 00:00

이원식 시조집 친절한 피카소서평/ 시조시학2011. 가을호(pp.249-252)

 

 

 

 

 

꽃의 은유, 넘치는 풍경의 변주

                                               - 이원식 시집 친절한 피카소

 

 

                                                                                                                               박 지 현

 

눈물과 꽃과 자화상의 미적 거리

 

   이원식 시인은 현재 왕성한 시작을 통해 등단 6년차에 벌써 3권의 시조집을 펴냈다. 한 권의 시집이 묶여져 나올 때마다 열정이 식을까 곧 다시 시집을 묶는 게 아닌가 할 정도이다. 평균 2년에 한 권꼴인데 결코 쉽지 않은 그 부지런함은 제2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2004불교문예에 자유시로 등단하여 자유시와 시조의 장벽을 허물며 시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시인의 말을 들어보자. ‘어느 날부터/쓰는 것보다 읽는 것이/읽는 것보다 생각하는 것이 좋아졌다./곧 뒤바뀔 답보(踏步).//버리지도 못하고/ 쌓일 것만 같은 짐, 미망(迷妄)./이 부끄러운 세 번째 시집이라며 겸손해 마지않는다. 한 권의 시집은 곧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다. 나의 삶이, 감성이, 나의 사유의 현 주소가 온전히 가식 없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시집 전체를 관류하고 있는 그의 성찰적 자세는 때로는 불교적이고 때로는 현자의 모습이기도 하고 때로는 주변의 일상을 섬세한 터치와 시선으로 순간 포착하는 에너지, 즉 강한 역동성으로 각인되기도 한다. 사물이나 대상을 피상적으로 접근하여 감상적 터치를 하는 것에 강한 반감이 있기라도 하듯 잔잔한 필치로 묵묵히 수행하는 자의 자세, 격랑 속의 평화가 엿보인다. 이에 정윤천 시인은 이원식 시인이 건너가는 말의 길에는 늘 불가(佛家)적 요소의 바탕들이 그림자처럼 깔려져 있다. 즉슨, 스스로의 비루함을 먼저 인정하고 마음을 내려 하심(下心)만으로 이 길에 드는 것이 불가적 요소의 속성일 수 있어 보인다. 고독과 정신 그리고 성취는, 시 이전의 시. 시 이전의 생. 그리고 그보다 앞장머리에 서 있을 만물을 향한 관용과 사랑에 관계하는 지극정성의 말의 집일 것이라고 평한다. 시인이 현재의 삶에 얼마나 천착해 있는가 알 수 있다. 눈앞의 생을 자신 안으로 적극 끌어들여 묵행 수행자처럼 조금씩 천천히 안에서 삭힌 것들을 꺼내놓는 것 같은 절제의 미덕을 발견할 수 있다.

   단시조만을 고집하고 있는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을 엿보기로 한다.

 

 

 

      눈물방울 그 속에도

      꽃들이 피어있다

 

      내 안의 붉은 장엄(莊嚴)

      건네지 못한 꽃 한 송이

 

      한 순간 핑 도는 고절(苦節)

      곧 잊혀질

      자화상(自畵像)

 

                                              - 가만히 들여다보면전문

 

 

 

   시 제목에서 시인의 절제된 모습이 연상되는 이 시는 단수가 갖는 묘미와 힘을 느낄 수 있다. ‘눈물은 액체지만 끈끈한 온갖 감정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한낱 작은 액체에 불과한 것에서 왜 우리의 많은 감정을 스스로 유발하고 있는가. 깔끔하면서도 절절함이 동시에 배어있는 이 감정의 정체는 무엇인가. 스스로를 꽃으로 본 시인의 눈은 차라리 붉다. ‘내 안의 붉은 장엄(莊嚴)/건네지 못한 꽃 한 송이눈물에 투사된 수많은 꽃들은 모두 나를 향해 피어 있으며 그 꽃들을 바라보는 나도 한 송이 꽃이다. 붉게 붉게 타오르는 슬픔이고 절망이다. 어디 가지 못하고 내 속에서만 피어 있는 절해고도의 이 꽃은 오직 눈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만 확인되며 선명하다. 일상의 평범 속에서 반추된 는 바깥으로 표출되지 않은 수많은 나를 만난 것이다. 사는 것이 곧 고행이라는 말이 있듯 나를 확인하고 돌아보는 것 또한 고행이다. 자신을 직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행위이다. 눈물이라는 결정체를 도입하여 나를 돌아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용기가 필요할 터이다. ‘한 순간 핑 도는 고절(苦節)/곧 잊혀질/자화상(自畵像)’이라고 눈물과 마주한 이가 곧 화자임을 밝히고 있지만 초장과 중장 그리고 종장을 두 구씩 연으로 구분함으로써 간극의 효과를 얻고 있다. 이 시는 외부의 자극과 흔들림에 의해 성찰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매개체 즉 기회가 주어질 때 그 순간 포착을 통해 내재되어 있던 를 터뜨리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기 위해선 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앞을 향해 달리다가도 문득 돌아서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고요히 눈앞의 그 어떤 매개체를 직시해야 하며, 그 속 깊이 침잠하여 가라앉은 나를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다. 고요라는 질료와 짜디짠 염분과 주변을 충분히 물들일 안료가 있으면 족하다.

 

 

 

      빗방울 속 늙은 지렁이

      한 줄 시를 쓰고 있다

 

      오래전 잇사의 시에

      화답(和答)하려 하는 걸까

 

      오롯이 귀 기울이면

      빗소리

      아니 눈물

 

 

                                                  - 길에서 만난 시인전문

 

 

 

   잇사는 일본 근세의 대표적 하이쿠 시인이다. 시인은 늙은 개가/지렁이 울음소리를/진지하게 듣고 있네에 대해서 화답하는 형상을 빗방울 속 늙은 지렁이에게서 보았다. 시인의 시적 감성이 순간 포착에 얼마나 능한 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발견은 곧 창의로 이어지며 내 속에 내재되어 있는 수많은 질료를 만나면서 딱 필요한 부분에서 그 빛을 발한다. 지렁이를 소재로 한 시는 매우 많다. 바닥을 기어 다녀야 제 생의 의미와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마른 땅에서는 그 목숨 부지가 어려울 터인데 빗방울은 매우 희망적이다. 재미있는 것은 늙은이라는 표현이다. 지렁이라는 개체를 나이를 구분할 수 있는 구체적 수식어를 통해 훨씬 감각적이고 명료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아마도 세 번째, 네 번째 구에서 잇사와 대등한 위치에 올려놓기 위함은 아닌가 짐작된다. 지렁이가 기어가는 형상은 단 선이다. 하이쿠와 이미지도 겹쳐진다. 내 마음과 나를 표현하기에 한 줄이면 족 한 것임을 지렁이도 잇사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화자의 내면에 이러한 울림이 지렁이를 움직이고 잇사를 불러내었을 것이지만 여기서도 눈물이 등장한다. ‘오롯이 귀 기울이면/빗소리/아니 눈물임을 보았다. 여기서 확인되는 것은 지렁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앞의 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눈물을 통해 나를 발견하듯 지렁이를 통해 눈물을 확인한다. 대상을 엇바꾸며 나를 확인하는 능수능란한 작시(作詩)가 돋보이는 시가 되겠다.

   이원식 시인은 시집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사물에 투영해서 발견한다. 그 발견은 다시 나를 성찰의 기회를 부여하는데 일조한다. 잠시도 삶의 가장자리와 중심부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부지런히 나의 안쪽과 바깥을 드나들고 있다.

 

 

 

 

 

 

박지현/ 1996시와시학에 시를, 2001년 서울신문,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로 등단. 시집으로 저물 무렵의 4권과 논문 일제 강점기 저항시의 주체 연구등이 있다. 정지용시인문학상, 이영도시조문학상 신인상, 청마문학상 신인상 수상. 현재 아주대, 호서대 강사

 

 

 

                                                     《시조시학》2011.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