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월평/ 권갑하,「굴린 시상을 어떻게 꿸 것인가」중에서,《월간문학》2011. 11월호(p.289)
굴린 시상을 어떻게 꿸 것인가
권 갑 하
암자 밖 투둑투둑
장맛비 거니는 소리
시든 꽃잎 감추고는
눈물 감추는 능소화
긴 호흡 식은 차 한 잔
소매 끝엔
꽃그림자.
- 이원식, 「납의(衲衣)를 깁다」전문
단시조인 위 작품은 불교적 색채를 띠면서 사유의 깊이를 맛보게 한다. 초장의 장맛비와 비를 맞고 있는
중장의 능소화, 그리고 종장에서의 차 한 잔과 소매 끝의 꽃그림자가 정중동의 이미지를 품으면서 '납의를
깁'고 있는 스님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그려진다. 시인의 시적 의도는 간접화되어 있다. 초장의 '거닌다'와
중장의 '시든 꽃잎 감추고/ 눈물 삼키는' 장면이 시상의 분위기 잡기라면 화자의 내면에는 뭔가 모를 슬픔
이 배어 있다. 여기에 '긴 호흡'과 '식은 차 한 잔'이 배치되면서 정적인 이미지는 심화된다. '납의'는 일반
적으로 스님의 옷을 말하는데, 누덕누덕 기웠다는 '납'자의 의미가 각별하다. 이렇게 이 시는 누덕누덕 깊
는 행위를 통해 깨달음을 찾아가는 스님의 정신세계가 '장맛비'와 눈물 삼키는 '능소화', 그리고 긴 호흡 속
의 '식은 차 한 잔'의 형상화를 통해 잘 우러나고 있다. 가볍게 읽으면 자칫 깊이를 놓칠 수 있는 작품이다.
《월간문학》2011.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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