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은, '다시 읽고 좋은 詩 정다운 이웃' 『대구북구소식지』2012. 2월호(통권 432호)
노점상 할머니에게
만 원짜리 이불을 샀다
깎지도 않았는데
팔천 원만 받으신다
베개피 오 천 원짜리
얼른 만원 드리고 왔다
- 이원식의「유쾌한 품앗이」전문.
시집『친절한 피카소』에서
새해 들어 설날도 지나고 벌써 2월입니다. 늘 서른 날을 못 채우고 마는, 그래서 1년 중 가장 막둥이 같은 애틋한 달이기도 하지요.
그런 가운데 졸업이 있고, 새 봄을 준비하는 기다림이 있는 시간을 건넙니다.
시장에서 이부자리 등속을 사는 이 시대, 가정적인 시인을 만납니다. 현란한 수식 없이, 어려운 말 한 마디 없이 그냥 보여주는 단시조, 삼장입니다. 백화점에서는 상표에 적힌 대로 갑을 다 주면서도 노점에서 물건을 깎았던 지난 일이 떠올라 제가 후끈한 순간입니다. 얼마나 선하고 순정한 얼굴이기에 만 원짜리 이불을 깎지도 않았는데 팔천 원에 준단 말입니까?
그러자 시인은 한층 더 떠 오천 원짜리 베갯잇을 사면서 만원을 놓고 오셨네요.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 마다 점점이 꽃이 피어났음을 눈 맑은 이는 보았을 것입니다.
버마와 태국, 스리랑카 등 남방 지역에서는 일상생활 속의 갖가지 활동과 마음 씀씀이를 집중 관찰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위빠사나 수행이 젊은 스님들을 중심으로 늘어간다고 합니다. 아마 이런 수행이겠지요!
한 가지 똑같은 사실에서도 그걸 바라보는 눈과 마음의 잣대는 얼마나 다양한 현실입니까? 오류에 빠지지 않고 유쾌한 품앗이로 채워나가는 이월을 꿈꿉니다.
(이승은 시인 jini221@paran.com)
『대구북구소식지』2012.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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