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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오현스님의 산문 및 시조 10편《문학사상》2007.4월호

이원식 시인 2007. 11. 4. 23:02

[산문]

 

          앞산은 첩첩하고 뒷산은 중중하다

               '마음과 마음으로 천 년 세월 흘러 내려오는 것'

 

                                                                                                                           조오현(曺五鉉)

 

    1980년 그해 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어느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 식당 종업원으로 들어간 지 달포쯤 지났을까. 얼굴이 희넓적한 동양인처럼 생긴 식당주인은 내 신분이 승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실한 카톨릭신자인 그는 나에게 미국인 신부 한 분을 소개해 주엇다. 학생 시절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했다는 그 신부님은 한국말을 잘 하지 못했으나 내가 하는 말을 양미순목揚眉瞬目 눈썹을 치켜뜨고 눈을 껌벅이며 잘 알아들었다. 그리고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더니 성당에서 설교를 하는 영광까지 안겨 주었다.

     처음 신부님이 초청할 때는 한국 불교에 대해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기때문에 이틀 밤을 지새워 설교 원고를 준비햇다. 그런데 연단에 올라서서 5백여 명이나 되는 미국인 신자들을 바라보는 순간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엉뚱한 이야기가 흘러나왓다.

     "신사 숙녀 여러분! 산승이 절간 소머슴살이를 할 때 우리 마을에 야쇼교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매주 일요일이면 온 마을 사람들이 예배당으로 다 모여들었어요.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옷이나 신발 또 우유 초콜릿 같은 것을 주었으니까요. 산승도 매주 예배에 참여해 기도를 하고 찬송가를 불렀지요. 그러던 어느 주일에는 욕심이 발동해서 이웃집 갓난아기를 빼앗아 업고 그것도 모자라 강아지 한 마리를 끌고 갔습니다. 그런데 갓난아이와 강아지 몫은 주지 않앗어요. 내가 항의를 했지요. 목사님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는데 금발의 여학생이 노리께 한 눈으로 빤히 쳐다보더니 갓난이와 강아지 몫을 내 몫보다 더 많이 주었어요. 그때 그 금발의 여학생 얼굴이 지금도 눈앞에 어른거리고 그 신기했던 옷가지나 신발, 우유, 초콜릿 맛이 아직도 입 안에 남아 군침을 돌게 합니다."

       이쯤에서 말끝을 얼버무리자 관중들이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를 보내 주었다. 난생처음 받아 보는 기립박수에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이번에는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 나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이야기와 대한민국 5천 년 문화민족이라는 것을 지상가상 없이 늘어놓고는 대한민국 사람의 마음속에는 체대상승遞代相承 마음과 마음으로 천 년 세월 동안 흘러 내려오는 것이 잇으니 이름 하여 '시조時調'라고 했다. 그리고는 조선 중종 때 송도의 명기 황진이의 생애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다음의 <동짓달>을 읊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버혀 내여

        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이번에는 통역도 하기 전에 모두들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냈다. 적이 당황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백호 임제(1549!1587)가 서도병마사로 부임하는 길에 황진이 무덤을 찾아가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느냐 누웠느냐

         홍안을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느냐

         잔 잡아 권하는 이 없으니 그를 슬허 하노라

 

 

         이 시조를 짓고 제사를 지내다가 임지에 이르기도 전에 파직당한 고사를 말하자 성당이 떠나갈 듯 기립박수가 한동안 이어졌다.

         그 후 나는 미국인 성당과 교회의 인기 있는 연사가 되어 10여 차례나 연단에 서게 되었고 주제는 기독교 문화가 한국 발전에 기여한 공로와 시조이야기가 전부였다. 특히 황진이가 당대의 명창 이사종 집에서 3년, 황진이 집에서 3년 살기로 약조하고 6년간 애정생활 끝에 깨끗이 헤어졌다는 이야기에 큰 감명을 받은 것 같았다. 한국에는 몇 백년 전부터 계약결혼 같은 것이 있었느냐고 묻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런 좋은 시조를 널리 알리는 것이 좋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시조를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10여 명이나 모여 매주 토요일 나를 찾아왔다. 하지만 미국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이 통역을 두고 강의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나에게 미국인을 상대로 시조를 강의할 만큼의 여유도 없었다. 그래 시조를 배우겠다는 사람들을 따돌리기 위해 직장 문제로 동부로 가야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샌프란시스코를 떠났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몇 해 전 뜻밖의 초대장을 받고 미국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휴스턴 국제공항에 내렸을 때 시조를 가르쳐 달라고 졸랐던 미국인 세 명과 식당에서 일을 같이 했던 한국인 두 명 그리고 그 친구들이 나와 나를 환영해 주었다. 또한 그들은 한국의 무술로 미국에서 크게 성공하여 전 세계에 회원 1백5십만 명을 헤아리는 '국술원' 서인혁 총재의 제자가 되어 있었다.

          나는 미국 여행 중에 테사스 주 '귀빈증서'와 휴스턴 시 외 17개 시에서 '홍보대사 겸 명예시민증' 그리고 미국 공군사관학교와 해군사관학교의 명예 지휘검을 받았는데 그것 모두가 27년 전 미국인 교회와 성당에서 한국 시조 이야기를 한 그 인연 때문이었다. 공항에 환영 나온 미국인 세 명 외에 황진이의 <동짓달>과 백호 임제의 <청초 우거진 골>을 우리말로 암송하는 미국 사람들 다섯 명이나 만났다. 그 무렵 미국에 한국 문학을 강의하러 온 국내 유명대학의 교수 세 명을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났는데 <동짓달>과 <청초 우거진 골> 같은 시조를 전혀 외우지 못할뿐더러 시조를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 시의 뿌리가 시조 아니겠느냐고, 기왕 미국에 왔으니 우리의 시조를 소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한국 교수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그런 것은 미국에서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몇 해 전 오세영 시인은 미국에서 어느 대학에 교환교수로 1년간 머물렀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현대시 강의를 했는데, 현대시를 강의할 때는 분위기가 시큰둥했는데 시조 이야기를 하자 반응이 너무 좋아 귀국해서 시조집을 한 권 냈다고 한다.

           다 같은 교수들의 말이 왜 이렇게 다를까.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안동 하회마을과 가장 오래된 사찰 봉정사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한국의 책 100선'에 시조집 한 권 내놓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현대시조 1백년 앞산은 첩첩하고 뒷산은 중중하다.

 

 

[시조 10편]

 

탄생 그리고 환희

-새해 동해 일출을 보며

 

동해 먼 물마루에는 불덩이가 이글거리고

해풍이 숨죽이는 아침 뜸 한 순간에

조산원 분만실에는 새 생명 첫울음소리

 

새들이 소리도 없이 나래 펼쳐 올렸을 때

금빛 물기둥이 하늘 끝에 닿아 섰다

함성은 노도努濤와 같이 밀려왔다 밀려가고

 

어항엔 돛 올리고 멀리 거물거리는 고깃배들

동남풍의 뱃사람 말이나 서북풍의 뱃사람 말이나

상앗대 다 놓아버린 늙은 사공 뗏말이거나

 

젖 물리는 얼굴 갓난이 숨소리 숨소리

겨우내 진노한 빙벽 녹아내리는 물방울들

홍조류 바닷말들도 한참 몸을 풀고 있다

 

 

 

춤 그리고 법뢰法雷

 

죽음이 바스락바스락 밟히는 늦가을 오후

개울물 반석에 앉아 이마를 짚어본다

어머니 가신 후로는 듣지 못한 다듬잇소리.

 

 

 

떠 흐르는 세월

 

가을이 소나기처럼 지나간 그대 정원에

열매 하나가 세상의 맛을 한데 모아

뚝 하고 떨어지는구나

다 쭈그러든 모과 하나.

 

 

 

머물고 싶었던 순간들

 

산과 산이 울거나 바다와 바다가 울거나

돛 달고 바람 받아서 물마루를 넘는 님인들

어쩌랴 산 속에 앉아 졸고 있는 놈인 것을.

 

 

 

떡느릅나무의 달

 

그대는 잠자리 날개

하르르 하르르한 실크치마

나는 공작문채孔雀文彩

그대 몸의 사마귀

높이 떠 멀리 비추렴

높이 떠 멀리 비추렴

 

 

 

너와 나의 애도哀悼

 

어린 나의 발걸음 헛기침 소리에도

피라미들이 물 위로 뛰어오르던 계류

어디로 다 흘러갔을까 불똥 같은 게 한 마리.

 

 

 

궁궐 바깥 뜰

 

양지 바른 언덕에 대궐로 통하는 길이 있고

탕약 짤 때 약수건을 비트는 막대기가 있다.

하지만

잎담배 한 냥쫑을 파는

가게는 그곳에 없다.

 

 

너와 나의 통곡

 

고향가는 길목 마음 던져 놓은 돌덤불도

오만가지 헝겁들이 걸려있던 당산나무도

그 어느 하늘로 갔습니까

어무이 아부지.

 

 

2007 · 서울의 대낮

 

서울 신사동 사거리 먹자골목 한 담벼락에

나체 사진 한 장이 반쯤 찢어진 오늘

그래도 지구는 돈다

갈릴레오의 그 푸념.

 

 

2007 · 서울의 밤

 

울지 못하는 나무 울지 못하는 새

앉아 있는 그림 한 장

 

아니면

얼너붙은 밤섬

 

그것도 아니라 하면 울음 큰 새 그 재채기.

 

 

 

발췌:《문학사상》2007.4월호 pp.5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