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a/시조자료·시조집

1.우리 민족의 내재율 3장(章) 6구(句)- 정완영

이원식 시인 2007. 11. 4. 23:03
시조 작법  / 정완영


오랜 세월 동안 망각의 바다 속에 버려져 있던 보물들의 인양 작업이 지금 우리 정부에 의해 서둘러지고 있는 걸로 안다.

가령 각 지방의 민속놀이의 부흥, 또는 무슨 연희자(演戱者)들의 인간문화재 지정, 예컨대 근자에 발굴된 안동 지방의 차전(車戰)놀이라든지, 봉산탈춤, 하회(河回)탈춤이라든지 심지어 어느 지방의 모내기 노래까지 모두 자리 있을 때마다 연희되고 있고, 우리 국악, 우리 판소리의 계승 문제, 조그만 기물들의 장인(匠人)에 이르기까지 소멸되어 가는 민족적인 정신 문화의 향수에 대한 배려가 오늘보다 더 고양되어 간 적은 일찍이 없었다.

하물며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 민족 역사의 애환이 스며 있다고 하여 대중가요에까지 훈장이 주어지는 오늘이 아니었던가.

한데 여기 아주 국보급 중에서도 국보급인 유산이 그

바다의 심저에 가라앉아 있는 채 인양자(當路者)의시선이 닿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우리 정신의 본향, 우리 정서의 본류인 民族詩歌 '時調'다. 다시 말해 3章 6句에 갈무리되어 있는 민족혼의 내재율 3 · 4 · 3 · 4(초장), 3 · 4 · 3 · 4(중장), 3 · 5 · 4 · 3(종장)의 시조인 것이다. 이것은 중대한 오류이며 시행착오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이 3章 6句에는 우리 민족의 온갖 사고(思考), 온갖 행위, 온갖 습속까지가 다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좀 비약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필자의 나라사랑의 안목으로 바라볼라치면 춘하추동 계절의 행이, 할머님의 물레 잣던 손길, 늙은 농부의 도리깨타작, 우리 어머님들의 다듬이 소리, 거 어깨춤도 절로 흥겹던 농악에 이르기까지 가만히 새겨 보고 새겨 들으면 3章 6句 아닌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이며 심지어 구부러진 고향길, 동구 밖의 느티나무, 유연히 앉아있는 한국 산의 능선들, 부연 끝 풍경소리, 아자(亞字)창의 창살, 어느 것 하나 3章 6句의 시조가락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다.

흐름(流)이 있고, 굽이(曲)가 있고, 마디(節)가 있고, 풀림(解)이 있는 우리 시조는 그 가형(歌形)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정신의 대맥(大脈)이 절로 흘러들어 필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하겠다. 하기 때문에 필자는 어떠어떠한 민속놀이, 어떠어떠한 고기물(古器物)에 앞서 진실로 민족정신의 보기(寶器)인 우리 시조를 먼저 인양해야 되리라고 믿는다.

우리 문단의 인구가 지금 1천 6백(이 책 발행시)을 헤아린다고 한다. 다른 이는 그만두고라도 글을 쓴다는 우리 문인들 중에서 시조의 틀을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 것인가?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문인뿐 아니라 전체 국민이 자기 나라 국시(國詩)인 단가(短歌) 배구(俳句)를 모르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네들은 촌부(村夫)이건, 공인(工人)이건, 회사원이건, 공무원이건 할 것 없이 이 국민시가로 하여 국민 정서의 순화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온 국내에 작가(作歌) 정신이 미만해 있는 것이다. 요즘 또 듣기로는 자기네 국시를 서구에까지 내보내어 그곳에서까지 '短歌會'니, '俳句會'니가 성행되고 있다는 소문이다. 우리들은 교과서에서 시조를 배운다는 학생들도, 이를 가르친다는 선생들도 건성으로 넘기고 있다.

그나 그뿐인가, 문인들 중에서는 간혹 시조 무용론까지를 들고 나오는 몰지각한 사람이 있으니, 심히 민망하고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유시 중에서도 시문학사에 남을 만한 작품은 거의가 시조적인 내재율이 흐르고 있는 사실을 이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의 맥박 속에는 본질적으로 시조적인 내재율이 흐르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문화재도 보호해야 한다. 연희도 계승받아야 하고 공장(工匠)도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더 시급한 일은 온 국민이 우리 국민문학 · 민족시를 모두 배우고 익혀 우리 정신의 대종(大宗)을 이어받고, 본류를 밝히어 정서를 순화하고, 인격을 도야하여 흐려지고 거칠어지려는 풍조를 시조짓기 운동으로 하여 바로잡아야 하리라 믿는다. 사실 우리 구국의 성웅 이순신 장군도 <한산섬 무루> 시 한 수로 하여 구국 충정이 더욱 빛났고, 절세가인 황진이도 <동짓달 기나긴 밤> 한 수로 하여 오늘날까지 그 향기가 전해 내려오지 않았던가. 물량에만 쏠리려는 우리들의 메마른 심전(心田)에다 물을 대주고 윤기를 돌리는 전국민 시조짓기 운동은 이제 봉화를 올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