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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다섯 가지 보법/ 정완영

이원식 시인 2007. 11. 4. 23:08
시조의 다섯 가지 보법/ 정완영


새벽잠이 일찍 깨거나 생각했던 일이 잘 안 풀리거나 하는 날은 나는 길동무 삼아 지팡이를 이끌고 관악산 숲으로 들어선다.
관악산은 巖山이라 초겨울 빛을 입고 섰는 磊落할 산세도 좋거니와 그 암벽에 뿌리박고 섰는 나무들의 모양들이 하나같이 제 나름의 형상을 이루고 있어, 저것은 무엇인가고 의아할 때도 있고, 어떤 孤節感 같은 것에 젖어 황홀할 때도 있다.
그 중에서도 몇 백년을 살았을 것 같은 연륜을 업고 섰는 고목나무 가지 아래 가서 지팡이를 멈추면 나무는 나보다는 몇겁은 더 세월을 경영한 長者의 모습으로 교훈을 다루고 섰다.
가사 어떤 나뭇가지들은 꼭꼭 깎아 맞춘 듯이 方正한 모습의 楷書體를 하고 있고, 또 어떤 가지는 보기 좋게 반흘림 行書, 또 어떤 것은 물 흐르듯 흘러내린 草書이다. 우리 아기가 장난감 꽂기들로 꿰맞추어 놓은 아기방 같은 모양의 篆書, 달밤에 울고 가는 기러기의 雁旅 같은 隸書體도 보인다.
그나 그뿐인가. 자세히 살펴보면 어떤 것은 무슨 물고기의 형상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나르는 새, 어떤 것은 달리는 짐승… 아무튼 우리 사람들의 시각으로는 다 포착할 수 없는 선사시대의 甲骨文 같은 것도 그 사이에는 보인다.
어찌 보면 일월성신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河圖洛書 같기도 한 이 고목나무 가지 사이에서 나는 시조의 三章六句法을 배우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가는 시조의 步法은 어떤 것인가? 다음에 그것을 얘기해 보기로 한다.
이 보법에는 대략 5가지의 수칙이 있으니, 첫째가 定型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형은 궁색하거나 옹색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가 필연적으로 다듬어 놓은 그릇이어서 정제된 우리말이면 무엇이나 다 담고도 남음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두 번째가 가락이 있어야 되겠다는 것인데, 우리 일상생활의 음률, 그 내재율이 무리없이 다듬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시조는 쉬워야 한다는 말씀인데, 까닭은 시조가 국민시이기 때문이다. 쓸 적에는 깊이 오뇌하고 무겁게 思量하고 곰곰 성찰하되 다 구워낸 작품은 쉬워야 된다는 이야기이다. 言短意長하라는 이야기이다.
네 번째는 根脈이 닿는 시조, 즉 喜·悲·哀·樂·妙·玄·虛, 그 밖의 어디엔가 뿌리가 닿는 작품을 쓰라는 것이다. 심심풀이, 더러는 화풀이 같은 작품이 눈에 띄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끝으로 시조는 격조가 높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시조가 아니다. 비속어, 천속어가 난무하고 제 몰골도 수습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되면 이것은 이미 시조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 우리 형제들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은 말은, 우리 시조는 우리 정신의 본향이요, 우리 人性의 本流요, 우리 생활의 내재율이라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흐름(流)이 있고, 굽이(曲)가 있고, 풀림(解)이 있는 우리 시조는 가락 그 자체가 바로 우리 산천이요, 우리 강산이라는 것이다.
우리 고향이 우리들의 心鄕이듯이 우리 시조는 우리 정신의 본향이다. 제 나라 민족시를 모르는 민족이 어떤 나라에도 없는데 우리만이 시조를 모르고 있다. 제 나라 민족시를 모르는 민족은 영원한 실향민이다. 이것은 문화민족으로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시조를 찾아 국적을 찾고 민족의 자랑을 돌이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