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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세계화, 時調에 길있다 / 유성호- 신문기사 원본사진 수록(조선일보 2005.1.15)

이원식 시인 2007. 11. 4. 23:10

 

 
文學세계화, 時調에 길있다
 
 
                                                                                                    유성호(문학평론가,한국교원대 교수)
 
 
우리가 ‘시조(時調)’를 정형 율격에 안정된 시상을 담는 전통적 시 양식으로 인식하는 관행은 매우 익숙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시조에는 정격(正格)의 정서와 형식이 담기는 것이 가장 어울려 보이고, 그로부터의 파격(破格)을 꾀하는 해체 지향의 언어는 다소 불편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시조 미학은 사물과의 불화보다는 화해, 새로운 것의 발견보다는 익숙한 것의 재확인, 갈등의 지속보다는 통합과 치유 쪽으로 무게중심을 할애해왔다고 해도 단견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다양성과 복합성으로 상징되는 현대성의 징후들을 담기에는 시조라는 정형 양식으로는 한계가 있지 않느냐면서 시조의 현재적 가치나 가능성에 대해 회의하고 있다. 심지어는 시조의 소통 현상 자체를 시대착오적인 복고주의나 국수주의 정도로 간단히 폄하해버리는 무지의 시선도 존재하니까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형 양식이 가지는 가능성과 한계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왜 꼭 시조여야만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요컨대 고시조와는 달리 현대 사회의 주류 미학으로 기능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한 현대시조를 어떻게 우리가 이해하고 활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현대시조도 그것이 시조의 육체를 입는 한 정형 율격의 기율은 섬세하게 지켜져야 한다. 시조를 쓰면서 시조 고유의 율격을 해체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 모순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 시조의 새로운 미학적 활로는, 이 같은 전통적 형식과 현대적 감각을 결합하여 새로운 시대적 요청에 다가서는 데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시 교육에서 이 같은 현대시조의 위상과 기능을 발견하고 제고하기에는, 시조가 갖고 있는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현대시조의 양상과 미학을 보여주기에는 현재 국정 교과서에서 현대시조가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하게 낮기 때문이다. 현재 중학교 교과서에는 김상옥의 ‘봉선화’, 유재영의 ‘둑방길’,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이은상의 ‘가고파’와 정인보의 ‘자모사’가 실려 있는데, 이 정도의 물리적 실증을 가지고 현대시조의 양식적 가능성과 한계를 경험케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언어, 습속, 정신, 위의(威儀)를 그 안에 자연스레 내장하고 있는 시조는, 그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시대의 풍속과 이념 그리고 보편적 정서를 끊임없이 드러내고 표상해온 우리 문학의 정수(精髓)이다.


따라서 우리는 시조에 대한 끊임없는 미학적 성찰과 갱신을 통해, 오랜 시간 축적해온 우리의 경험적 미의식이나 심미적 감각들을, 감각과 가치의 지표가 잘 변하는 시대에도 유력한 항체(抗體)로 키워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경험한 서구인들의 상당수는, 한국의 시 양식 가운데 특히 시조에 대해 관심이 많고, 일본의 하이쿠에 비견되는 견고한 생명력과 자기 갱신력을 가진 장르로 시조를 이해하고 있다. 최근 시조가 음주사종(音主詞從)의 가창적 특성이 사상되고 문자 예술로서의 지위만을 굳히게 되면서 근대 자유시에 주류의 자리를 내주게 되었지만, 이제 그 문학사적 공백을 반성하여 현대시조에 대한 형식적·내용적 탐색을 지속해가야 할 때이다. 한국문학의 자연스런 세계화를 위해서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