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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신영복

이원식 시인 2009. 6. 23. 00:24

 

 나무야 나무야(1996)  글, 그림 신영복

 언덕에서 멀리 돌팔매를 하면 돌멩이는 둥글게 포물선을 그으며 떨어집니다.

 공중에 둥근 포물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돌멩이를 보면서 그것은 지구가 공처럼 둥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매우 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 '책머리에' 중에서

 

 옛날의 어머니들은 자기가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저마다 누군가의 자양이

 되는 것을 삶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자모(慈母)라 하였습니다.  (p.16)

 

 통일신라가 백제당에다 거대한 미륵입상을 세운 이유에 대하여 주목하고 주의하라던

 당신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것은 백제땅의 모든 미륵들은 빠짐없이

 이 미륵장륙상 앞에 와서 절하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모악산 미륵' p.45)

 

돌하르방이 부릅뜬 눈으로 증언하듯이 제주땅의 역사 또한 저항과 좌절, 승리와 패배로

응어리져 있습니다. (p.56)

 

 오늘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백두대간이 달려오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600년 전의

 서울도 보이지 않습니다. 작은 가슴 위에 축조된 거대한 콘크리트 빌딩만이

 시야에 가득 다가옵니다.  (p.62)

 

 '천 개의 손'. ('눈이 달린 손은 생각하는 손입니다' p.67)

 

세상에서 가장 능력이 있는 사람은 수많은 손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철학을

우리는 이미 완성해놓고 있습니다. ('눈이 달린 손은 생각하는 손입니다' p.69)

 

 최근 5년 동안에 폐교된 학교가 무려 1,200개교가 넘고 올해도 다시 300~400개교가

 문을 닫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농촌의 초등학교는 마을의 꽃이고 미래였습니다.

 꽃이 없어지고 미래가 사라진 이 황량한 교정에서 어느 한 사람의 추억에 잠기는 것은

 감상(感傷)입니다. 당신의 말처럼 시선을 들어 농촌을 보아야 합니다. 2억 평의 농경지가

 묵고 있는 농촌 그리고 해마다 수십만 명씩 떠나간 농촌의 실상을 보아야 합니다.(p.74)

 

 완고한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미천한 출신의 바보 온달을 선택하고 드디어

 용맹한 장수로 일어서게 한 평강공주의 결단과 주체적 삶에는 민중들의 소망과 언어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p.81)

 

 만일 당신이 사회의 현장에 있다면 당신은 당신의 살아 있는 발로 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대학의 교정에 있다면 당신은 더 많은 발을 깨달을 수 있는 곳에

 서 있는 것입니다. 대학은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종속의 땅'이기도 하지만

 그 연쇄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가능성의 땅'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p.93)

 

 고운이 가야산으로 입산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도 그가 왕건에게 보낸 글 중에 있는

 계림황엽(鷄林黃葉) 곡령청송(鵠嶺靑松)이란 구절 때문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p.104)

 

 지금도 나의 뇌리에서 지울 수 없는 것은 어둑새벽 대학병원의 수도꼭지에서

 양껏 찬물을 들이켜는 그의 모습입니다. 물을 타서 좀 더 많은 피를 몸 속에 남기려 했던

 그의 허망한 노력입니다. (p.114)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무지와 질병으로부터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오랜

 역사를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과 방향에 있어서

 우리는 실패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더 많은 자유는 언제나 더 큰 구속과 불평등을

 동반함으로써 자유의 의미를 회의하게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소비하고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소유해야 이러한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p.138)

 

 나무야 나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