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시집/第3詩集·친절한 피카소·황금알, 2011

《불교문예》에 실린 이원식 시집『친절한 피카소』서평

이원식 시인 2011. 9. 26. 00:00

 

이원식 시조집 친절한 피카소서평/ 불교문예2011. 가을호(pp.204-207) 

 

 

 

 

서정의 힘, 시의 힘

- 이원식 시집 친절한 피카소(황금알, 2011)

 

 

                                                                                                                             안 현 심

 

 

                따스한 봄날 공원

                개와 개가 마주쳤다

 

                짧은 정적 사이로

                쏟아지는 하얀 환생(幻生)

 

                서로는 눈가에 맺힌

                요람 속에

                나부꼈다

 

                                                                                                                               - 이원식, 벚꽃 한 줌전문

 

 

   시조는 정형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시와 변별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서정시에 포함시킬 수 있다. 시조는 소설이나 희곡 형식이 아닌, 시의 형식으로 표기되기 때문이다. 최동호는 앞의 글에서 극서정시와 단장  시조의 변별성을 논의한 바 있지만, 극서정시를 확장한 자리에 단장시조 혹은 단형시조를 위치시킬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즉 극서정시가 단형시조는 될 수 없지만, 단형시조는 극서정시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견해이다.

   『친절한 피카소에서 이원식은 단형시조만을 선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세계를 완벽하게 자아화하는 데 단형시조 이상의 언어는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원식이 자신의 문학 블로그에서 우리 시의 품안에서 짧은 시의 아름다움을 찾기 위하여 단수(單首)를 택했다고 고백한 것은 그와 같은 소신을 재확인해주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작품들을 극서정시와 근접한 위치에서 해석한다고 해도 무리한 판단은 아닐 것이다.

   「벚꽃 한 줌은 전반부가 시각적 이미지로써 구성된다. 시적 화자의 시선이 옮겨감에 따라 각 연의 그림이 다르게 전개될 뿐 화자의 감정은 개입되지 않는다. 1연에서는 따사로운 봄날 두 마리의 개가 마주치는 장면이 제시된다. 2연에서는 두 마리의 개가 마주보는 정적 사이로” “하얀 환생으로 환기되는 벚꽃잎이 쏟아진다. 환생(幻生)실제는 없으나 환상처럼 나타남혹은 형상을 바꾸어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자칫 종교적 관점의 윤회 환생(還生)으로 오인 할 수 있는데, 종교적 의미의 환생은 영혼이 한 번 이상 연속된 존재로 태어남을 지칭하는 차이점이 있다.

   결국 이 시는 타자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가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제3연에서는 요람 속에 나부끼던 서로의 모습을 발견하고 연민으로 눈시울을 적시기에 이르는 것이다. 두 마리의 개에게 제3연과 같은 상황을 촉발시킨 동기는 제2연에서 하얀 환생이 쏟아짐으로 해서이다. 시인은 감정을 배제한 채 수묵화를 그리듯 상황을 묘사함으로써 간결하고도 정제된 시를 탄생시킨 것이다. 언어를 극도로 정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백에서 웅숭깊은 파장이 감지된다.

 

 

                살얼음 물길 따라

                먹이를 찾는

                새끼 물오리

 

                저만치 어미 물오리

                눈시울이 붉어있다

 

                산책길,

                길 멈춘 모녀(母女)

                두 숨소리 젖어있다

 

                                                                                                                             - 이원식, 데칼코마니전문

 

 

   살얼음 덮인 강물에서 아기오리는 먹이를 찾기 위해 헤엄을 치고, 저만치서 지켜보는 어미오리는 눈시울이 붉다. 산책하다가 어미오리와 아기오리의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와 딸 또한 숨소리가 젖은 채이다.

   이 시의 제목은 데칼코마니이다. 데칼코마니는 종이 위에 그림불감을 칠하고 반으로 접거나 다른 종이를 덮어 찍어서 대칭적인 무늬를 만드는 회화 기법이다. 이쯤에서 시제를 데칼코마니라고 지은 시인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어미오리와 아기오리가 데칼코마니의 한쪽 부분이라면, 산책하다가 눈시울을 적시는 모녀는 그들과 대칭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대칭에서 벗어난 부분이 있다면 바라봄의 각도와 연민을 일으키는 대상이다. 어미오리가 아기오리를 바라본 반면, 산책하던 모녀는 두 마리의 오리를 동시에 바라본다. 따라서 어미오리가 연민하는 대상이 아기오리라면, 모녀는 어미오리의 행위를 보고 연민의 눈시울을 적시는 것이다. 생명체 중에서 자식사랑하지 않는 종()이 어디 있겠는가? 이원식은 보편적인 진리를 문학적으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인용한 이원식의 작품들은 짐승과 사람의 생명을 동등하게 인식하면서 동일한 사고체계를 지닌 것으로 환기하고 있다. 친절한 피카소에 상재된 작품들 대부분이 두 작품과 창작기법이 유사하지만, 다수의 작품들은 종교적 깨달음을 보여주기도 하고, 선의 세계를 형상화하면서 불교적 색채를 진하게 드러낸다.

 

 

 

안현심/ 시인. 문학평론가. 하늘 소리, 서정주 후기시의 상상력. 한남대학교 강사.

 

 

 

 

                                                    《불교문예》2011.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