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렌즈에 잡힌 시조⑩ - 임채성,「치열하거나 치밀하거나」중에서(pp.286~288)
치열하거나 치밀하거나
임채성
화단 한 켠
버려진
금간 옹기(瓮器)
품안에
새들의 입김
가득한
투명 꽃들
웃고 있다
어느 생(生)
흘렸을 눈물
곧 잊혀질
작은 유품
- 이원식,「발견(發見)」전문, 《문학청춘》(2017.여름호)
짧은 매력, 긴 여운을 주는 단시조의 묘미는 이원식 시인에게서도 발견된다. 「발견」이라는 제목처럼 화단 한 켠에서 우연히 마주한 사물을 통해 인생을 관조하는 깊이의 시학이 엿보인다. 시인은 우리시의 품 안에서 짧은 시의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단시조를 '목숨'처럼 떠받드는 시인이다. 시조 원형으로서의 단시조는 절제된 시어를 통한 압축과 은유, 종장에서의 반전을 통한 철학적 깊이 등 시조의 맛과 멋을 한껏 고양시킬 수 있는 장르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는 등단 이후 4권의 시조집을 모두 단시조로만 채우며 한국적 운율과 여백의 미를 발견하기 위한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위의 작품도 압축과 은유, 반전의 미학이 잘 발현되고 있다. "화단 한 켠/ 버려진/ 금 간 옹기/ 품 안에" "투명 꽃들 웃고 있"는 장면을 보다 "어느 생/ 흘렸을 눈물"을 떠올리는 것이다. 형태적으로도 한 음보를 한 행으로 배열하는 행갈이를 통해 여백의 미를 극대화하고 종장에서의 반전을 꾀한다. 그런데 버려져 있는 금이 간 옹기 속의 꽃들에는 "새들의 입김"이 묻어 있다. 그것은 새들이 꽃을 따 먹었거나 부리로 쪼아 망가뜨려 놓았다는 뜻일 게다. 그래서 빨강꽃도 아니고 노랑꽃도 아닌 "투명 꽃들"인 것이다. 투명하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흔적으로서의 실체다. 누군가에게 앗긴 삶은 그렇게 '눈물'로 남지만, 눈물이 마르면 기억에서 잊혀질 존재이기에 "잊혀질 작은 유품"에 지나지 않는다. '화단'이라는 주류에 끼지 못하고 '금 간 옹기' 속에 웅크린 꽃의 존재는 이 사회의 수많은 타자들을 은유한다. 가진 자들의 폭력에 의해 조그만 성취도 허락지 않는 변두리의 취약한 삶을 응시하는 시인의 태도가 두보의 그것을 닮아 있다.
《문학청춘》2017.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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