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ry/내 작품평·해설

김은령 ‘선지식을 찾아가는 구도의 노래’《맑고 아름다운 사람들》2009.02

이원식 시인 2009. 2. 27. 00:00

■김은령, ‘선지식을 찾아가는 구도의 노래’《맑고 아름다운 사람들》2009. 2월호

                              

                                                                                         


        오세암 풍경 소리

        잊고 가는 영혼 소리


        긴 겨울 달을 품고

        옥창(獄窓)의 서시를 쓴다


        넋 태워 날 선 등잔불

        임을 향한 선문답

   

        침묵의 시린 돛배

        화두(話頭) 앓는 종소리


        고향땅 고목(枯木)에 필

        매화꽃을 기다리며


        잠든 숲 겨울눈꽃의 

         밤 향기를 낚고*있다

 


            *만해선생의 한시 중에서 인용. 원문은"枯樹寒花收夜香"




                                     - 이원식,「만해(卍海)의 옷깃」전문




   치욕의 근대사에서 매향으로 머물다 간 선각자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만해 한용운 선사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엄혹한 시절 육신과 정신 모두를 민족을 위해 다 바친 분이기에 시국이 불안 하고 사람살이가 곤궁한 지금, 더 간절한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한 편의 시를 만났다.

  문학의 책무 중 그 하나가 시대의 아픔과 현실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이원식의 시 <만해(卍海)의 옷깃>은 치열하게 살다간 선지식의 족적을 매개로 혹한으로 접어든 이 시대를 염려하는 시인의 노래이다.

  풍경 소리를 벗 삼아 정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만해선사가 영혼까지 잊어버리고 감옥에서 애국충절을 노래했던 심정을 시인은 '오세암 풍경 소리/ 잊고 가는 영혼 소리' '긴 겨울 달을 품고/ 옥창(獄窓)의 서시를 쓴다' 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옥창의 서시를 쓰는 상황은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시인 자신과 우리들의 모습일 것이다. '넋 태워 날선 등잔불/ 임을 향한 선문답' 이란 문구에서 보듯, 춥고 어두운 이 시대의 논제를 임(만해)을 향해 답을 구하고자 하는 시인의 구도(求道)는 치열 하다. 하지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돛배)은 침묵하고 있어, 아직 화두(해답)를 얻지 못하고 앓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시인은 바로 '고향땅 고목(枯木)에 필/ 매화꽃을 기다리며' '잠든 숲 겨울눈꽃의/ 밤 향기를 낚고 있다'라고 짐짓 여유를 부린다. 그것은 만해(卍海)의 옷깃(만해 사상)을 스치기만 하여도 고목에도 매화꽃이 핀다는 것, 그 꽃향기가 펴져 나가면 겨울도 가고 곧 봄이 온다는 것, 을 구도를 통해 알았다는 것이며, 그 사실을 슬쩍, 독자들에게도 건네주고 싶은 시인의 속내가 아닐까? 불가(佛家)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다겁(多劫)생에 걸친 인연이라 하지 않는가. 고목 같은, 긴 긴 겨울 같은 현실에서 매화꽃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시인의 옷깃에서 풍기는 매향(梅香)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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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령  경북 고령 출생. 1998년《불교문예》등단. 시집『통조림』.

               현대불교문인협회 대구 경북 회장 역임. 現在 《사람의문학》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