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소설집『녹색 칼국수』황금알, 2010. 12. 24.
'후루룩 후루룩'
국수 먹는 소리에 위가 꿈틀댔다. 눈을 떠보니 흰색 버티컬브라인드가 창문의 바람을 맞는 소리였다. 아침
인지 저녁인지 모호했다. 어릴 적, 방과 후에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나서 책가방 챙겨들고 학교에 가려던 때
같았다. 반듯이 누워 천장을 보니 베이지 색 바탕에 연갈색의 완자무늬가 맞물려 있다. 거기에 버티컬브라인
드의 움직임에 따른 그림자가 너울거린다. 벽지무늬를 좇아가면 옆에서 혹은 위아래서 온 무늬와 겹쳐서 다
시 만난다. 어느 쪽이든 조금만 나가면 사람과 마주치는 서울이 답답했었다. 온종일 달려도 풀 한 포기조차
없는 사막, 그런 막막함이 차라리 내게는 시작할 용기를 줄 것 같았다. 그러나 모든 기대는 나를 저버렸다.
서울 못지않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틀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으로 사는 이상 그 틀을 깨트릴 수는 없다.
한국이 아니라도 장소만 다를 뿐 어떤 변화를 기대하는 건 무리였는지 모른다. 십여 년을 떠나 살아도 남은
건 허망한 마음과 칼슘이 빠져나간 늙은 몸 뿐이었다.
멸치국물 냄새다. 도마질 소리에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돌돌만 반죽을 썰고 있는 어머니 손에 푸른 정맥
이 돋아 있다.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 김영민의 단편「녹색 칼국수」중에서(pp.129-130).
로즈마리, 신밧드의 모험, 핏줄, 연희당, 녹색 칼국수, 술래잡기, 육각 스팽글, 게으른 캥거루.
이렇게 여덟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작품집은 다분히 여성적 성향 짙게 배어있는 잔잔한 소설집이다.
군데 군데 속삭이듯 그리고 진득하게 이어져가는 작품의 전개는 우리 주변의 아주 가까운 일상들을 섬세하
게 표현해 주고 있다.
지독한 아픔이거나 슬픔이기 보다는 그래도 세상을 아름다운 시선으로 끄집어 내어 권유해 보려는 작가의
따스한 녹색빛 감성 가득한 한 권의 소설집이다.♣
작가의 약력.
작가의 자필.
작가의 말.
차례. 작품집에는 모두 8편의 단편들로 엮어져 있다.
로즈마리 표지(p.9).
「육각 스팽글」(pp.167-189).
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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