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ry/발표글·산문

■내 작품의 모더니티/「미망(迷妄)혹은 자화상(自畵像)」《시와반시》2012.여름호

이원식 시인 2012. 6. 18. 00:08

 

                                                      《시와반시》2012.여름호

 

 

■내 작품의 모더니티/「미망(迷妄)혹은 자화상(自畵像)」《시와반시》2012.여름호(pp.135-138)

 

 

 

                                        미망(迷妄) 혹은 자화상(自畵像)

 

                                                                                             이원식

 

1.짧은 시로서의 단시조(單時調)

 

          “(전략)...모더니티는 전통의 형식에 새로운 변화를 주어 또 다른 전통을 창조하는 신생의 동력으로 보

         았다. 전통을 기저로 하여 새로운 전통을 창조할 때 그것은 낡은 것 같으면서도 항상 새로운 생명을

         지닌다고 본 것이다.”

                                               - 이숭원 중용의 시각에서 본 모더니티」 《현대시학2011. 10월호(p.217).

 

    위의 글은 이숭원 교수의 한국현대시문학사에 대한 시론(詩論)’ 중에서 시의 정도로써 순수시를 주장했던 조지훈의 모더니티에 대한 시각-새로움을 추구하는 현대시의 경향으로 본 모더니즘과 구분하여-을 나타낸 글이다. 물론 이 글과 시조가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지에 대해 언급된 것은 아니지만, 조지훈의 모더니티에 대한 시각은 다분히 현대시조의 흐름이거나 나아갈 방향과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특히, ‘전통(傳統)을 기저로 한다는 것과 새로운 전통을 창조한다는 것은 시조를 쓰는 입장에서 더욱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이 아닐 수 없다.

    문화가 발전할수록 전통에 대한 가치는 그 중요성을 더해가지만, 일부 문화에 대해서는 오히려 서양의 그것에 비해 진부하다거나 소수의 보수적 형태를 띈다하여 혹은 젊은 세대와의 공감 부족과 소외 등을 이유로 잊혀가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일례로 시조(時調)’도 해당되는 것인지 스스로 자문하는 것 또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도 시(), 시조(時調)도 시(). 다만 정형(定型)의 형식 유무에 따라 개별 장르로 구분되는 것 일뿐 모두 언어로 노래하는 운문(韻文) 문학이 아닌가. 시와 시조 두 장르 모두 당연히 시작품으로서의 완성도가 제일 중요한 관건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으며 전통을 기저로 한다는 모더니티의 시각에서는 전통시 양식인 즉 정형시로써의 시조가 더욱 그것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견해이다.

    시단에는 지나치게 길어진 산문시의 경향에 대해 소위 짧은 시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현대시조에도 우리의 전통 형식인 정형의 미를 살리면서 동시에 짧은 시로서 충분히 변별력 있게 표의(表意)할 수 있는, 길이가 짧은 단수(單首) , 단시조(單時調)가 있지 않은가.

    단시조는 시조의 원형(archetype)으로, 3645자 내외의 짧은 형식으로써 절제된 시어와 압축 은유(Telescoped Metaphor) 등을 적절히 활용하여 한국적 운율과 여백의 미, 종장(終章)에서의 반전 혹은 철학적 깊이 등 시조로서의 맛은 물론 시로서의 가치와 예술성도 함께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2.개와 고양이에 대한 단상

 

 

이 생()엔 그대에게

다가 설 수 없는가

 

떨어지는 꽃잎하나

위로할 수 없는데

 

어쩌랴!

두 눈 깊숙이

제 스스로 눕는 풀들

 

- 누렁이 마음전문

 

 

    위 단시조는 2007년 첫 시조집 누렁이 마음에 수록한 것이다. 주변 일상에서 눈에 흔히 띄는 것 중에서 집 없는 개이거나 길고양이등 동적 시정(動的 詩情)을 내재하면서 인간애(人間愛)를 닮아 있는 것을 시의 소재로 삼았다. 굳이 모더니티에 접목시켜 본다면 사라질 듯 끊임없이 이어져가면서 나름대로의 미적, 철학적 정서로 인간과 더불어 진화해가는 살아있는 빈티지들을 그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다음은 2009년 두 번째 시조집 리트머스 고양이에서 옮긴 시조이다. 작품집의 제목과 같은 표제의 작품으로 외래어를 시어로 접목시켜보았는데, 당시 일부 보수적 시조시인들로부터 매우 부정적인 말씀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2~3년이 지난 지금은 외래어를 우리말 앞에 수식한 시조집 제목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인적 없는 곳에서는

바람도 꽃이었다

 

꽃이 되고픈 길고양이

바람의 잎을 떼고 있다

 

상처 난 발자국 따라

수놓는 헌화(獻花)

 

붉은,

푸른

 

- 리트머스 고양이전문.

 

 

 

3.피카소와 비둘기의 다의적(多義的) 풍경

 

 

암자뒤란 눈밭 캔버스

물음표 찍고 갑니다

 

노스님 미소 뒤엔

모락모락 공양 한 술

 

산새들 날아듭니다

입을 모아

 

뭐꼬

뭐꼬

 

- 친절한 피카소전문.

 

 

    피카소라는 이름난 화가의 이름을 빌어 언뜻 피상적(皮相的)으로 볼 수 있는 시선 속에 묵시적(黙示的)인 시적 효과를 기대한 이 시조는 2011년 세 번째 시조집 친절한 피카소에 수록한 작품이다.

    지금껏 낸 세 권의 작품집 속에서 세 편의 시조를 들추어낸 이유는 내 작품의 모더니티라는 산문의 소제목에 어설픈 논리로 내 부족한 지식과 상식마저 들추어내기 보다는 차라리 작품으로, 작품 속에서 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현재 진행 중인 네 번째 시조집의 모티브 역시 인접한 곳에서 소외되고 외면당하는 비둘기를 통한 따듯한 인간애의 접근이다. 내 작품의 모더니티는 아주 가까운 곳으로부터의 작은 혁명, 그것이다.♣

 

                                                            이원식 시인(p.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