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ry/발표글·산문

■시(詩)에서 시(時)를 보다《시와문화》2008.가을호/ 이원식

이원식 시인 2010. 6. 24. 00:39

 

《시와문화》2008.가을호(통권7호)

 

 

■한시 미학 산책 /《시와문화》2008.가을호 pp.238-239

 


                                               시(詩)에서 시(時)를 보다

                                               -매월당(梅月堂)의 시


                                                                                                                     이 원 식

 

 

  딱따구리


  딱따구리! 딱따구리! 네 무엇이 부족해서

  뜰의 나무를 소리 내어 쪼고 있니.

  쪼는 것도 모자라 ‘꺼억 꺼억’ 울기도 하고

  사람을 피해 깊은 숲 속으로 날아가니.

  숲 속은 깊고 산은 고요해서 쪼는 메아리소리

  얽혀진 가지 위에 벌레를 혼내주는구나.

  좀벌레도 늙은 벌레도 많아 너의 배를 채우고

  너의 좀벌레 쪼는 것 모두 공이 크다.

  세상에 물건을 좀 먹고, 백성을 해하는 자

  너무나도 많은데 물리칠 사람이 없다.

  너의 뾰족한 부리로 나무의 재앙은 물리치겠지만

  인간을 좀 먹는 재앙은 어떻게 능히 없앨까.



  啄木啄木爾何窮  啄我庭樹聲丁東

  啄之不足恰恰鳴  畏人避向深林中

  林深山靜啄愈響  慴機槎牙枝上虫

  蠹多虫老飽汝腹  爾於啄蠹多全功

  世上蠹物害民者  千百基數無人攻

  縱汝利觜除木灾  人間蠹灾詎能空


  


    이 시는 딱따구리가 숲 속을 찾아 벌레를 쪼는 모습에서 현실 비판적인 의미를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딱따구리’는 ‘뜰’(제도권)에서 ‘숲’(제도권 밖)이라는 더 큰 무대로 옮겨간다. 옮기기 전부터 불만의 조짐(울음)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숲 속의 ‘나무’(백성)를 갉아 먹는 ‘벌레’(해 하는 이)를 찾아 쪼음으로서 주린 배도 채우고, 벌레를 혼내준다. 벌레 쪼는 ‘메아리’소리는 ‘벌레’들에게는 두려움이 된다. 이로서 딱따구리의 불만과 더불어 ‘나무의 재앙’은 해결 될 수 있지만 ‘인간을 좀 먹는 재앙’(무기력한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날선 화두(話頭) 하나를 던지고 있다.

    이 시는 이 시를 지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 자신의 모습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이후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평생 승려가 되어 현실의 제도 밖에서 겪는 삶과 단종(端宗)에 대한 절개,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그 인품과 지조를 지킨 고결하면서도 방외인(方外人)적인 성향과 시에서 주는 메시지가 무관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아마 그 시절에도 ‘백성을 해하는’ 존재가 많았던 모양이다. ‘딱따구리’의 부재(不在)와 만족스럽지 못한 사회를 향해 각성의 쓴소리를 내뱉은 것이다.

    이 시대는 어떠한가. 시대를 거쳐 오면서 각 시대마다 ‘딱따구리’는 모습과 행동을 달리하며 ‘벌레’를 쪼는 ‘공(功)’을 세웠을 것이다. 이 시대에도 분명 ‘딱따구리’는 존재하고 있다. 이 시대의 딱따구리로 ‘촛불집회’를 들고 싶다. 손에 작은 ‘촛불’을 든 ‘딱따구리’는 한 마리가 아닌 수백, 수천 아니 엄청난 딱따구리 무리가 되어 불을 밝혀든다. 예전의 작은 ‘부리’가 아닌 거대한 기류(氣流)가 되어 ‘인간의 좀 되는 재앙’으로부터 지키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딱따구리’는 ‘딱딱 뚝뚝’ 소리를 내며 내일을 밝혀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