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식 시집 『비둘기 모네』 표사(4)글
오랫동안 단시조 창작에만 몰두하여 ‘시조의 본령사’가 된 이원식 시인은 네 번째 시집 『비둘기 모네』에서 또 한 번 시조의 압축과 절제의 미를 한껏 보여준다. 그리고 그는 이 단아한 미학으로 말한다. “모든 생명은 생명으로서 존귀하고 그 존귀함은 동일한 것이다.” 라고. 그의 이런 사상은 불교의 진리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그가 취한 시어는 풀, 꽃, 개미, 거미, 매미, 나비, 새, 길고양이 등을 둘러싸고 있는 작고 낮은 것이며 그것의 운용은 다정하고 다감하며, 흔쾌하고 명쾌하다. 여기에다 이 시집을 비둘기에게 헌사라도 할 듯 2부의 객관적 상관물은 모두 비둘기인데 이는 『육도집경』에 실려 있는 ‘비둘기를 살린 살바달 왕’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경전 속 왕의 저울질은 내가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을 때 비로소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것이고 보면, 이원식 시인의 세상 보는 눈이 여기 있다 하겠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니 이 시인의 세상을 향한 마음이 어떠한가 잘 알 수 있다 하겠다. 형식, 내용 모든 면에서 작은 경전 한 권 같은 시집이다.
- 강현덕(시인)
글쓰기에 있어 일관되게 단수만을 고집하는 이원식의 작품을 읽어 내기란 쉽지 않다. 이원식의 작품을 말한다면, 간결하지만 그 깊이는 너무 아득하다. 우선 글에 설명이 없고, 너스레가 없고, 치장도 없으니 직조된 언어가 만들어 낸 의경(意境)! 그것을 관(觀)함이 정법이다. 그런데 그 의경의 배후인 실경(實境)과 허경(虛境)을 그려 내는 시인은 여전히 수행적 글쓰기(頭陀行)를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시인은 수행이란 ‘처음과 끝냄(“서설(瑞雪)인지/ 서설(絮雪)인지”)’에 대한 의미조차 이미 ‘없음(“이내 한 줌 모래바람”)’을 알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점오(漸悟)의 꽃”을 위해 나아가는 그의 수행적 글쓰기의 비장함을 읽을 수 있다.
- 김은령(시인)
화려한 이미지의 직조, 관념적이고 자기 성찰적인 의미부여, 두서없는 의식의 흩뿌림이 힘을 얻는 시단에서 이원식 시인의 정갈한 시편은 이채롭기만 하다. 시인이 주력하는 단시조는 대상시이고 형상시다. 전통적인 내재율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묘사는 감각적이고 이미지 구사는 현대적이다. 순박하고 정감 있는 풍경을 때로 이국적으로 묘사해 선연한 대비를 이루는 것이 낯설면서도 신선하다.
이원식 시인의 정처(定處)는 어디인가? 그가 조우하는 대상은 비둘기 여러 마리, 물오리 몇 마리, 늙고 지친 잉어 같은 물고기, 나비와 개미 등 하찮은 곤충, 누렁이나 길고양이 같은 동물이다. 노인이나 부랑아, 비둘기색 장삼을 입은 협객(俠客)의 모습도 언뜻 비친다. 그가 이들 사물이나 버려진 약자와 동행하며 무문관(無門關)을 넘어 도달하려는 곳은 무애(無崖)한 꽃밭이요, 묵천(默天)의 하늘이며, 화엄의 세계다. 결국 자신 바깥에 있는 자신의 본바탕[佛性]에 다름 아닌 것을.
- 김창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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