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or Camera/디카 스토리·디카 시

[시조]바퀴를 위하여

이원식 시인 2007. 11. 27. 06:48

아파트 단지 자전거길. 자전거가 누워 달린다.

 

어느날 아파트 단지와 단지 사이 길을 건너려고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갖난 아이를 실은 유모차가 다가와 섰고, 잠시 후엔 할머니를 태운 휠체어를  한 할아버지가 밀면서 왔다. 모두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다리는 짧은 시간에 비슷한 눈높이의 유모차속 아가와 휠체어속 할머니가 흰구름보다 연한 눈웃음으로 이 세상 무엇보다 행복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세상의 모든 시간은 멈추어버렸고, 아늑하고 따뜻한 정적만이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 오후, 잠시 같은 길을 지나면서 2년전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그때 지은 시조 한 수와 시집에 실린 해설을 옮겨 본다.

 

 

 

[시조]

 

 

바퀴를 위하여

 

                        이원식

 

유모차 속 아가가

할미보고 웃는다

 

휠체어에 앉은 할미

아가보고 웃는다

 

삶이란 구르는 바퀴

요람에서

무덤까지

 

 

 -시집『누렁이 마음』중에서

 

 

 

 

 [해설]

 '유모차'와 '휠체어'는 생성과 소멸, 요람과 무덤을 은유하는 사물들일 것이다. 그런데 '유모차' 안의 아가와 '휠체어' 안의 할머니가 서로 마주 보고 웃고 있다. 여기서 생성과 소멸이 순차적인 것이 아니라 순환적인 것이며, 긍정과 부정이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 요람과 무덤이 한몸으로 존재한다는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사유가 담기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유모차'와 '휠체어'를 동시에 지탱하고 있는 것이 바로 '바퀴'다. 여기서 '바퀴'는 그 자체로 '윤회(輪廻)'의 상상력을 수반하면서 "삶이란 구르는 바퀴"라는 인식을 명징하게 호출할 수 있는 개연성을 제공한다. 그래서 '바퀴'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굴러가는 생을 은유하면서, 바퀴가 굴러가듯이 생사의 세계를 반복하여 그침이 없다는 '윤회'의 뜻을 함축하게 되는 것이다.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해설을 써 주신 유성호 교수께서 금년 가을 학기부터 한국교원대에서 한양대 국문과로 옮기셨다.

 

 

'■Photo or Camera > 디카 스토리·디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80원  (0) 2007.12.03
가을을 배웅하다  (0) 2007.12.01
[시조]난초화(蘭草畵)  (0) 2007.11.25
새해 달력  (0) 2007.11.24
눈 덮인 동네를 지나가다  (0) 2007.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