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남은 한 달이 지나면 새해가 올 것이다.
엊그제 토요일, 시내 거리를 지나가다 폐지 줍는 할머니를 보았다. 누군가 버린 신문을 주워 손수레 상자 속에 넣고는 다시 가던 길을 가고 있었다. 차마 정면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어 뒷모습 한 장을 찍었다.
가엾은 할머니들을 소재로 지금껏 몇 편의 시조를 썼는데, 문득 시조가 아닌 시 한편이 떠오른다.
3년 전 일이다.
백화점 불빛들이 유난히 반짝이던, 크리스마스를 앞 둔 12월 어느 날.
큰 거리 백화점앞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 앞을 유유히 지나가시는 폐지 줍는 할머니를 보았다.
언젠가 동네 외진 곳에서 몇 번 보았던 분인데 이곳에서 뵐 줄이야.
나도 모르게 그 할머니가 가시는 길을 따라 한참을 갔다.
도착한 아파트 한쪽 구석에는 따로 모아 둔 폐지들이 보였다.
그리고 방금 주워온 폐지들을 그곳에 가지런히 쌓아두는 것이었다.
(사시는 곳은 아파트가 아니었고, 아파트 재활용 창고 한 켠에 폐지를 모으고 있었다.)
"할머니, 그 신문지 모아 팔면 값이 얼마나 되지요?"
"음, 종이 모으면 1킬로에 80원이야"
원래 수학을 못하는 내 머리 속은 복잡했지만, 순간, 서글픈 마음이 또렸하게 각인되어
무거운 발길로 돌아왔던 기억이 떠오른다.
폐지가 1킬로에 80원이라는 사실(지금은 얼마일까?)과 내가 가끔 먹는 천 원짜리 과자 한 봉지를
사려면 도대체 얼마만큼의 폐지를 모아야 하는 걸까...하는...불손한 생각...
눈에 보이는 세상이 다가 아님을 새삼 되새기며, 왠지모를 죄스런 마음에 젖었었다.
아니 지금도 가끔은.
그때 지은 부끄러운 시를 떠올려 본다.
[시]
80원
이원식
까무잡잡하고 새우등을 한
그 할머니는 오늘도
아파트 주위를 맴돈다
구겨진 손으로 펼친 폐지(廢紙)
손자 안듯
꼭 끌어안고
미소 짓게 하는 힘
과자 한 봉지 값도 안 되는
1킬로에 80원
(2004년, 미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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