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시집/第3詩集·친절한 피카소·황금알, 2011

■이원식 시집『친철한 피카소』해설/ 정윤천 시인

이원식 시인 2011. 5. 4. 00:06

                                                                                              

이원식 시집친철한 피카소』 해설(pp.102~118)

 

 

 

                너는 무엇을 보았음을 나에게 이르는가

 

                                                   정윤천(시인)

 

1.

 

                유리창을 맴돈 지

                얼마나 지났을까

 

                창문을 두드리며

                길을 묻는 빗방울 소리

 

                껍질만 남을 때까지

 

                위빠사나

                위빠사나

 

                                                                            - () 무당벌레 전문

 

  어느 눈 밝은 혜안에게 얻어 걸리면 이런 따위의 논조는 초장부터 박살이 날지도 모른다. 그만큼 자신의 눈앞에 가로놓인 본래의 뜻이 되었거나 의미를 헤아린다는 일은 막중하고도 신중해야 할 치심(治心)의 방편이자 두렵기도 한 일이었다. 그런 위험을 모험처럼 무릅쓰며 필자는 지금부터 이원식 시인의 제 3시조집 친절한 피카소에 깃들어 있는 이경의 시간 속을, 어슬렁거림에 다름 아닐 걸음으로 걸어가 보기로 한다. 부디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만이라도 '보이기'를 바란다.

  "위빠사나"는 참선의 의미와는 사뭇 다른 경계에 있는 어의(語意)라 하였다. 매순간에 처한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직시적으로 관()하고자 하는 정념에의 매달림 같은 것. 그런 높고 쓸쓸한 명상의 지경으로, 눈과 마음 앞에 걸려있는 자신의 소행이자 저의까지를 있는 그대로 보려 한다는...그러니 나는, 나의 주인이자 하인도 될 수 있는 ''를 통하여 무엇을 보았음(구했거나)을 나에게 이르려하고 있었는지 혹은 이르며 있었는지.

 한 가지의 똑같은 사실에서도 그걸 바라보는 눈과 마음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견해와 오해의 바다에 빠질 수 있음을 이르거나 경계하는 말 "위빠사나"한편으로 '정신을 좀 차려라'는 일갈로 대신해도 좋을 이즈음 시단의 히스테리적인 시()쓰기와 시() 보기의 잣대들 앞에서도 낭창낭창한 회초리가 되어 주어도 괜찮을 것 같은 시구로 읽혀져 왔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아마 첫 대면이나 다름없는 그의 시조 () 무당벌레는 그렇게 두어 가지 면에서 새로움과 가능성을 안겨 주었다. 하나는 시조단이 말하는 시조의 현대성이거나 현실참여의 문제 등이 그렇게 요원한 일만은 아니었구나 하는 바라봄이었으며, 특히 다른 하나는 그 작품을 에워싸고 있는 한 시인의 언술 속에서, 시로 구현된 '위빠사나'로 인한 소름이 돋는 것 같은 인화의 시간을 바라보았다는 점이었다.

 무당벌레 한 마리 유리창에 날아와 박힌(!) - 사실은 그 자리에서 육탈되어 껍질만 남아있었을 것 같은, 누구나 한번쯤 마주쳤을법한 그런 순간에의 각성 하나가, 시인의 촉수에 걸려 필연처럼 시의 순간으로 발화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창문을 두드리며/ 길을 묻는 빗방울 소리" 라니, 이쯤 되면 무당벌레는 이미 빗방울이고, 빗방울이 무당벌레가 되어있었던 셈이다. 합일이고 분열이다. 아니다. 둘 다 그런 게 아니어도 크게 상관이 없어질 것 같다. 어떤 경계의 극한이라는 것은 사실상 세간이 출세간이고, 출세간이 이미 세간이 되어 있었던 것 아니었겠는가다만 그의 시행은 시행다운 위의로써만 문득 거기에 서서 제 자리를 간직해 주고 있는 중이다. 언제 어디서든, 말로써 끌고 가는 시의 강을 따라 걷다가 저런 말의 한 풍경을 마주치게 되면 누구든 그 말과 시로써 잠시 평안해져 버려도 괜찮으리라.     

 

  자유시와 시조의 영역을 넘나들며 시의 도량에 주저앉아 시의 "위빠사나" 삼매에 든 이원식 시인의 세번째 시조집의 원고 친절한 피카소, 무슨 인연의 겁을 지나서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다는 것일까.

  지난 2004불교문예로 등단하여 시작활동을 해오던 이원식 시인은 이듬해 월간문학에 시조를 발표하며, 오히려 시조시인으로 활발한 문명을 쌓아온 이력이 역력해 보인다. 그간 두 권의 시조집을 세상에 선보였다. 1누렁이 마음그리고  2리트머스 고양이에 이어서, 이번에 출간되는 친절한 피카소역시 그가 어디선가 무언가를 보았음을 전하는 단형의 예리한 '글의 집'이다.

 별다른 뜻 없이 무당벌레의 운으로 졸고의 문을 열었는가 싶었는데, 웬일인지 1집의 행간에서도 "무당벌레"가 들켜온다. 흥미로움 삼아 건너가 보기로 하자

 

 

               유리창에 갇히어

               박제가 된 무당벌레

 

               화려한 계절은

               아쉬움만 남기고

 

               창 열자 꽃잎이 되어

               날아가는 

               칠보단장(七寶丹粧)

 

                                                                                 - 풍장(風葬)전문

 

 그러므로, 이 두 시조 사이의 간극을 그의 시조행의 지난한 행려로 읽어도 무방할는지 모르겠다. 위에 있는 시는 깊고, 아래의 시는 아름다워서 함부로 우열을 논하기는 어려우나 필자의 감식안으로는 위 시가 더 고요롭다.

 하지만 창틀에 갇힌 한 점박이 곤충의 사체 곁으로 '바람'의 손짓이거나 입김을 불러 내와서, , 장엄하고도 간결한 소멸의 순간을 매듭짓는 그의 솜씨는 이미 그가 어쩔 수 없는 생래적인 시인의 기질이었음을 여실하게 들켜주고 있다. 칠보단장의 무지개 꽃잎. 한 시인의 눈매가 우물처럼 깊거나 눈보라처럼 슬펐거나 가벼워보지 않았다면 한사코 이룰 수 없는 갸륵한 표현은 아니었겠는지.

 

 이원식 시인이 건너가는 '말의 길'에는 늘 불가(佛家)적 요소의 바탕들이 그림자처럼 깔려져 있다. 즉슨, 스스로의 비루함을 먼저 인정하고 마음을 내려 하심(下心)만으로 이 길에 드는 것이 불가적 요소의 속성일 수 있어 보인다. 그러니 사람들은 절에 가서 부처님의 형상만 일지라도 그 앞에서 깊게 깊게 엎드려 절을 올린다. "귀의 할랑께 받아주란 말이요." 하고 말이다. 이럴 때는 저 어렵고도 오묘한 법문이거나 경문 같은 건 그 다음의 일인지도 모른다. 그저 한번 낮아져 보거나 둥그러워져 보는 일. 그러고만 싶은 순간 속으로 드리워지는 쳇바퀴를 닮은 원()의 가슴의 현현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벌써 어리석고 죄가 많은 속인이며 속속인들에게 불가는 얼마든지 위무와 화해의 악수를 맞잡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태어나고 소멸되는 생과 멸의 문제에 얽힌 별의별 치사함과 존엄함에 대해서 사유하게 하는 빛나는 구중심처이고도 남음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불가의 안쪽은 늘 난해하거나 너무 심각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집에 드는 대문의 문턱은 나지막하게 항상 열리어 있었을 것이었다. 암만, 여기에도 그런 되나쾌나한 찰라의 시조 한 편이 새초롬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노점상인 몇이 모여

               점심을 먹습니다

 

               간간이 던져주는

               밥술 혹은 반찬 몇 점

 

               하나 둘 모여듭니다

               동네 새들

               고양이들

 

                                                                                  - 만다라의 품전문

 

  여기에 대고 무슨 해설이며 사족이 필요하겠는가. 이원식 시인이 이르는 생의 순간들에 기반을 둔 불가적인 고백의 영성은 그만 그만 키 작은 꽃나무들 같은 "만다라의 품"으로 도처에서 출몰하고 있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 시행들이 다시 표제작품이기도 한 친절한 피카소에 와서, 새들에게 고양이에게 밥술을 나누어 주는 노점상인들을, 영락없는 노스님 삼아 옷과 장소만 바꾸어 입혀서는 암자 뒤란의 눈밭 캠퍼스에 '미소' 물감으로 한 그림을 지어놓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새들이 잔뜩 날아와서 "뭐꼬 뭐꼬" 찍어 먹고는 돌아가느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피어나게 하는 영롱한 순간을 안겨준다. 이것 역시 그가 설하는 불가적 요소의 한 방편으로 드러난다.

 

 

               암자 뒤란 눈밭 캠버스

               물음표 찍고 갑니다

 

               노스님 미소 뒤엔

               모락모락 공양 한 술

 

               산새들 날아듭니다

               입을 모아

 

               뭐꼬

               뭐꼬

 

                                                                               - 친절한 피카소전문

 

 

2.

 

 시를 재봉한다는 일의 고단함 속으로 얼비쳐 드는 불교적 사유의 너비와 행간. 통문 (通門)이라는 제하의 시조에서는, 통문에 대한 해설이 달려있다. "가사를 지을 때 폭을 겹으로 하여 바느질한 사이로 이리저리 통하도록 낸 구멍. 콩알을 넣어 사방으로 굴려서 막히는 곳이 없도록 함. (通門佛)."

 

 

               마른 잎 새가 되어

               빈 하늘을 두드린다

 

               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바깥일까

 

               소매 끝에 감추는 점두(點頭)

               붉어지는

               풍경소리

 

                                                                                    - 통문(通門)전문

 

 사실 이 시행들이 가리키는 손짓의 저쪽은 위에 처한 시행들에 비하여 다소간 어렵게 다가온다행간이 문득 넓어져서 우원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원식의 시 세계는 인류사 이래 한 꼭짓점을 이룬 사유계의 총체이기도 하였을 불교관의 서정에 이마를 기대며 있다. 거기에서 그는 어떤 빛깔의 색과 향을 더는 구하고자 하는 것인지.

 애초부터 불교라는 어원은 부처님의 설법이라는 뜻과 부처가 되고자 하는 수행의 과정이란 의미가 함께 포함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었거나 짐작하는 '일체 석가모니불'(불교라는 단어 일체가 석가모니화 되어있는)과는 다소 차이가 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불교는 그렇게 석가의 탄생 이전에도 포교가 이루어지고 전파가 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다만 불제자의 한 사람이기도 하였을 석가의 존재와 훈향이 그가 머물다간 자리의 뒤에서, 아직도 그치지 않는 지고한 그리움과 절대의 신성으로 기념되기도 추앙 받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것은 인류의 가슴이 간직한 한 아름다움의 천착에 대한 꼭짓점일 수도 있었다.

 시를 바느질하는, 저다지 통문의 순간을 기리는 시인의 자리에도 작은 깨달음의 신성은 와서 임하는 것일까. 무섭도록 까마득한 시 한 편을 문득 이 곁에 놓아보기로 하자.

 

 

               향을 싼 종이에서

               향내가 난다더니

 

               다포 (茶布)를 담근 물이

               그대로 찻빛이다

 

               불현듯 그 물속으로

               뛰어드는

               벌레 한 마리

 

                                                                               - 무리수를 두다전문

 

 

 그렇다면 솔개의 소나무 그림에 새가 와서 앉았다는 전설에 다름 아닌 장면 같은 걸 이원식 시인의 시는 재현이나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찻빛 물속으로 뛰어든 그 벌레는 평소 차를 즐기는 벌레였을까. 아마도 아닌 것 같았다. 조금만 비켜 앉아 들여다보아도 그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건 벌레의 시가 아니라 사람(자신)에 관한 시였음에 틀림없어 보인다.

  "무리수"를 두었던 어느 어리석었거나 허무맹랑하였을 지점의 통회를 다만 그렇게 옮겨 적었을 것이다. 이원식 시인은  "위빠사나"가 바로 서지 못한 순간들의 경계를 "무리수"로 환치하여 자꾸만 읽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렇게 이원식 시인의 시의 "바느질"이나 "위빠사나"의 정체는 들켜오기 시작한 셈인지도 모른다.

 

 

               꽃 피는 계절에도

               머물지 않았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바람이 일러 줍니다

 

               물 위에 비친 세상은

               동행(同行)할 수

               없다는 걸

 

                                                                           - 강물 보법(步法)전문

 

 

 그는 그렇게 시와 더불어 제 생의 당면한 길을 가고 또 그렇게 자신의 시업의 제 시간들을 건넌다. 걷는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지도 모르겠다. 머리에는 희대의 정신을 담고, 다리에는 "강물보법"을 불러들여서, 그리하여 그의 불교사유의 도타운 근간은 지루하거나 따분한 '불교예찬'의 방식이 아니었음을 간단없이 깨닫도록 하여주고 있다. 물 위에 어리는 그림자 세상 따위의 속으로는 걷지도 걸을 수도 없겠다는 각성의 그 때를 위하여 이원식 시인과 그의 시는 "총총총/ 생을 가르는/ 물오리의/ 발자국" (하적)이 되어 시와 함께 더불어 가는 먼 길 위에 나섰다.

 

 

               반쯤 헐린

               담장 아래

               누렁이

               빈 밥 그릇

 

               사흘을

               울고 떠난

               낙숫물

               고여 있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떠도는

               꽃잎 한 장

 

                                                                                    - 공화(空華)전문

 

 비어있음과 빛남의 공존. 빈 하늘엔 가끔 달이 떠서 가난한 것들의 머리 위를 비춘다. 그것도 한 공화의 순간임에랴

 

 

3.

 

 전체 5부로 꾸며진 시조집 안의 시들은 차츰 후반부로 오면서, 많은 시의 소재들이 한마디로 삶이라는 말로 통칭할 수 있는 '생활''자연'으로도 진로를 바꾸는 것을 여겨볼 수 있다. 어떤 예술의 영역에서도 '당대의 상상력'이자 바라봄이 자리하지 않으면, 그것은 마치 '달나라의 장난'처럼 위험해질 수 있는 독성을 가질 수 있음을 경계할 때. 이원식 시인이 당대를 호흡하는 한 사람의 시조인으로서도 믿음직한 부분들을 여기에서 만나도록 하여준다.

 

 

               좌판 한켠 쭈밋*

               팔고 남은 귤 몇 알

 

               퀭한 두 눈 깊숙이

               멍들고 깨진 생()

 

               입 속에 까 넣어본다

               핑 도는

               금빛 눈물

                     

                   *쭈밋: 북한어. 무엇인가 하려다가 문득 망설이며 머뭇거리는 모양.

 

 

                                                                                       - 수고했다전문

 

 이 시조는 무엇보다 제목이 참 이채롭다. 귤에게, 쭈밋한 것들에게, 그것도 팔다가 남겨진 못난이들에게, 퀭한 두 눈에게, 멍들고 깨진 생들에게. "수고했다"라고 건넨다. 대개의 경우

'수고했다'라는 인사는 작별의 순간을 대신하기 십상이다. 등을 한 차례 토닥여주거나 가볍게 손을 잡아준 뒤에 돌아서 가기 위한 준비 단계의 행동으로 보여지곤 한다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입 속에 까 넣""핑 도는" "금빛 눈물"을 맛본다. 생을 대하는 자세, 주위의 슬픔과 불우에 동참하는 포즈. 이럴 때의 그의 시행은 어쩌면 참 스스로  "수고"로웠을지 모를 시인된 자의 모습을 반추하여 주기까지 하고 있다.

 

 3부와 4부로 이어지는 시들의 말미에 와서 어쩐 일인지 그의 시는 잠시 '아름다운' 순간들을 포착하기 시작한다. 두리번거린다. 단형의 정형 율조에선 놓치기 쉬운 유연하고 포만한 시행들마저 기민한 그물질로 포획하고 있는 중이다. "손에 꼭 쥔 강물 한 조각" "나는 아니라 해도 바람이 사랑이라 한다" "꽃잎 진 그 자리를 돌아본 적 있던가" 등등의 화려한 문체들이 출몰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음영. 애련. 미망. 같은 단어들이 지척을 기웃거리면서 어쩔 수 없는 계면의 정조를 한 구석에 배치하는 섬세함마저 선보여 주고 있다. 어쩌면 누구든지 아름다움의 진수를 취하려면 비애의 달밤을 건너 저 물레방앗간 너머까지 한번은 걸어갔다 와야 하리라는, 시에 대한 숙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는 것이렸다.

 생의 낮은 자리를 배회하는 그의 심성이 자리한 한 편의 시조에도 여전히 그가 맺혀있다. 알겠다. 아름답다는 말은 어떻게 오고, 그 속에는 적당한 음영, 적당량의 애련 또한 미망처럼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그리하여 필자는 독자들에게 한 차례 묻기로 한다. 아래의 시행들을 지나면서 그대들도 "유쾌"한가라고...유쾌함이 보여지는가라고...

 

               노점상 할머니에게

               만 원짜리 이불을 샀다

 

               깎지도 않았는데

               팔천 원만 받으신다

 

               베개피 오천 원짜리

               얼른 만원 드리고 왔다

 

                                                                                - 유쾌한 품앗이전문

 

 이번에는 다시 시인 이원식에게 묻기로 한다. 생이 다소간 유쾌해질 수 있으려면, 너나들이로 이천 원 쯤, 삼천 원쯤 "깎지도" 부르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건네주는 일이었더냐고, 그런 "품앗이"였던 것이냐고.

 이렇게 읽으면, 이원식 시인의 제3시조집 친절한 피카소를 관류하는 그의 시의 고독과 정신 그리고 성취는, 시 이전의 시. 시 이전의 생. 그리고 그보다 앞장머리에 서 있을 만물을 향한 관용과 사랑에 관계하는 지극정성의 '말의 집'일 것이었다

 시집의 종장에 해당하는 5부에 자리 잡은, 그의 지성과 현대성이 상존하는 시행의 면면들은 눈 밝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하고, 우선은 주마간산에 다름없는 필자의 터무니없이 허약한 시 읽기의 고투를 서둘러 이쯤에서 마감할까 한다. 그가 부박한 작금의 시단에 의미 있는 한 봉우리의 시인으로 두둥실 떠오르기를,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자신의 작업에 대한 정진에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것을 축원하기로 한다.

 마치는 시편 하나를 남아있는 원고에서 골라내었다. 그가 시행으로 건져 올린 "피어리드""꽃밭에 내리는 눈/ 꽃으로 피어나고// 강물에 내리는 눈/ 강물이 되어 흘렀다" (피어리드)고 하는데, 필자는 왠지 졸고의 "피어리드"로 이 시가 더 맞춤하게 여겨졌다.

 

               고요한 호수*

               그라치오소(grazioso)

               파랑새가 날고 있다

 

               한 잎 한 잎 갈앉는 세연(世緣)

               옛 기억을 깁는 달빛

 

               세상에

               단 하나뿐인

               얼굴 하나

               그리고 있다

                    

                    *유키구라모토의 피아노 곡명. 원제는 'calming(medicine) lake' 

 

                                                                         - 사랑을 위한 오브제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