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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령 시집『잠시 위탁했다』

이원식 시인 2018. 4. 23. 00:01

 

김은령 시집『잠시 위탁했다』문예미학사, 2018. 3. 30

 

 

          인간의 마을에 불시착한 나는

          하루에 사만 팔천 번 태어나

          사만 팔천 번 절망하고

          천파만파 내 오감을 핥는 설풍(說風)에

          사만 팔천 번 허기져도

          단 하나의 말씀조차

          몸속에 새겨 두지 않는 것은

          아주, 아주 가벼워지기 위함인 것,

 

          달그락, 달그락

 

          헝클어진 뼈마디를 맞추어

          어느 때, 어느 날

          사람의 형상을 벗어던지고

          이륙을 꿈꾸는 뼈

 

                                 - 김은령 시인의 시「귀소」전문, p.96

 

 

문득, 문자가 왔다. 라면 냄비 받침을 하나 보내 주겠다는....

그리고 며칠 뒤 정말 라면 냄비 받침이 하나 왔다. 그것도 아주 귀한!

'잠시 위탁했다'라는 김은령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내가 문단에 발을 내딛고 본 시인 중 가장 대쪽(!) 같은 시인이다..... 여자 분께 표현이 좀 심한가! 죄송.

늘 한결 같은, 변함 없는 분이다. 생활도, 시도 공부도.....

그래서 내가 지금껏 그 믿음으로 시인을 누님으로, 역시 한결같이 따르고 배우고 있는 까닭이다.

 

시인의 약력에는 기재하지 않았지만 시인의 2012년 두 번째 시집 '차경' 이 2012-2분기 우수문학도서로 선정

되었고, 그 이듬해인 2013년 '백신애문학상'의 손홍규 소설가와 함께 '백신애창작기금'을 수상한 바 있다. 

 

시집을 보다가 문득 시인의 모습이 퍼뜩 스치는 한 작품.(아래의 시)

시인의 선연(鮮然)한 삶을(비록 일부분 이겠지만) 잘 표현해 주는 시다.

시인의 아니 누님의 세 번째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시집 속 한 편의 제목이자 법구경의 한 구절처럼 늘 한결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시길.....화이팅!!

 

 

          냉장고 속 먹다 남은 무 한 토막

          버리려다 보니 싹이 나고 있었다

          몸뚱이 반 이상 잘려나갔음에도

          무의 푸른 대가리는 싹을 틔우고 있었다

          그 현상이 신기해서, 어떤 간곡함이 보여서

          수반에다 담아서 싱크대 귀퉁이에 두었다

          화초에 주는 알갱이 영양제 몇 개도 넣어 주었다

          하루가 다르게 솟아오르는 줄기

          비록 가느리긴 했지만 하나 또 하나 잎이 나더니

          꽃을 피웠다. 연보랏빛 품은 흰꽃!

          무꽃의 향기가 라일락향기와 닮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의 부엌을 잠시나마 라일락 향기로 채운 것은

          푸른 빛깔의 힘이었다

          몸통의 위쪽이 푸른 무는

          쪼그라들면서도 썩어 가면서도

          꽃을 피우고 향기로웠다

          위쪽이 푸른 종족은 몸뚱어리 반이 잘려나가도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목도했다

 

                                    - 「무꽃을 보았다」전문, p.76

 

 

시인의 약력.

 

시인의 자필.

 

시인의 말.

 

차례. 시집에는 모두 58편의 작품이 4부로 나누어 엮어져 있다.

 

「반성」p.11

 

「와중에」pp.68-69

 

「點心」p.87

 

고증식 시인의 해설「우연히 만나고, 문득 깨닫고, 오래두고 닦다」pp.99-109

 

표사. - 장옥관(시인)

         - 고증식(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