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or Camera/디카 스토리·디카 시

암향부동월황혼(暗香浮動月黃昏) 2007. 8. 16

이원식 시인 2007. 11. 5. 09:47

 새벽 산책을 하다가 비에 젖어 버려진 낡은 액자 하나를 발견했다.

언뜻 보니 "암향부동월황혼(暗香浮動月黃昏)"이라는 임포의 싯귀와 함께

매화가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액자는 너무 낡아서 버리고, 매화와 한 줄 시만 책장에 걸어두었다.

아래에 이 싯귀의 원문과 해설을 옮겨본다.

 

산원매화(山園梅花) / 임포(林逋)

衆芳搖落獨暄姸
중방요락독훤연

占盡風情向小園
점진풍정향소원

疏影橫斜水淸淺
소영횡사수청천

暗香浮動月黃昏
암향부동월황혼

霜禽欲下先偸眼
상금욕하선투안

粉蝶如知合斷魂
분접여지합단혼

幸有微吟可相狎
행유미음가상압

不須檀板共金尊
불수단판공금준

 

산원매화 / 임포

모든 꽃 다 졌는데 홀로 아리따워
담뿍 정취 머금고 저만치 피었구나
맑은 개울물 위로 성긴 그림자 비꼈고
그윽한 향기는 달빛 속에 번져 온다
겨울새 공중에서 내려오다 눈길 먼저 주나니
봄나비가 보았다면 넋을 잃고 기뻐하리
그래도 시 읊조리는 사람 있어 이를 아끼니
요란하게 노래판 술자리를 벌일 것도 없는 일이라

경칩에 폭설이니 계절을 잃어 버린
매화는 여름을 노래하네...

※중국 북송(北宋)시대 시인. 자는 군복(君復).
항저우[杭州] 출신. 구산[孤山]에 은거하면서 20년간
도시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고,
절강성에 있는 서호(西湖)에 은거하며,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아(매처학자, 梅妻鶴子)살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추가해설)

 

중국 송나라의 임포 林逋(967-1028). 그는 항주에 있는 서호의 고산에서 결혼도 하지 않고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자식 삼아 (매처학자 梅妻鶴子) 벼슬을 버리고 신선처럼 고고하게 은거하며 살았다.


그의 시 “산 동산의 작은 매화(山園小梅)”는 너무나 유명하다. 

이 시는 만고의 절창으로 알려져 있고, 여기에서 매화 향기를 암향이라고 한 표현등은 유명하다.


暗香浮動月黃昏    암향부동월황혼


매화향기를 표현하는 말 가운데 가장 많이 사용해 온 것이 암향(暗香)이다. 매화의 향기는 강한 편이 아니다. 그래서 밤이 깊어 사위가 적막할 때 비로소 먼 곳에서도 스며드는 은은한 향기를 암향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밑에 부동(浮動)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한다. 그래서 월황혼(月黃昏)이라는 임포의 시구가 있듯이 매화의 향기는 대낮보다는 으스름한 달빛과 잘 어울린다. 은은하고 청아한 매화의 후각적 요소를 어렴풋하고 차가운 달빛의 시각적 특성으로 전환시킨 것이 바로 월매도(月梅圖)요, 야매도(夜梅圖)이다.


 또한 매창(梅窓)이라고 하면 달빛에 매화 그림자가 창문에 비치는 것을 뜻하고, 소영(疎影)이라고 하면 그 매화가 바람에 흔들리는 어렴풋한 그림자의 이미지를 가리킨다. 향기의 후각, 달빛의 시각, 그리고 꽃가지의 그림자가 불러일으키는 촉각적인 이미지들은 서로 조응하여 공감각적인 시너지 효과를 준다.

 

매화시는 때로는 매화 그림의 소재가 되어 왔는데, 선비들은

매화를 그리고 시를  읊어야 제대로 군자 대접을 받았다.

 

임포외에 매화에 미친 사람은 이황, 조희룡, 육우 등이 있다.